“레이크 박사,고액의 연봉을 거절하고 하나님만 신뢰하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 과정의 인도하심이야기(1)”~~이 이야기는 이미 하나님의 장군의 일기 책을 읽으신분들도 다시 읽어보시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다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실상을 말하자면 나는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가족들의 필요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하며 나 자신을 예수님을 전하는데 온전해 내어드렸습니다.
나는 다시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3 개월 동안 나는 매일 많은 회중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죄에서 구원을 받고 질병을 치료 받았으며 수백 명이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그 3 개월의 마지막 날, 나는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이제 내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일 외에는 모든 것이 영원히 끝났습니다.”
일리노이 주 북부의 한 도시에서 사역하던 중, 머물고 있던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큰 나무를 자르는 일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는 흔쾌히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우리가 톱질을 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내 마음에 분명하고도 또렷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인디에나폴리스로 가라. 그리고 겨울 집회를 준비하라. 넓은 홀을 얻어라, 너는 봄에 아프리카로 가게 될 것이다.”
이 일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능력은 여러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을 이루는 능력이 있습니다. 호텔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그 음성에 대해 전하자 아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네 남편의 때가 다 되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곳에서 당신의 사역이 끝났다는 것을 며칠 전부터 있었어요.”
나는 인디에나폴리스로 갔고 주님께서는 나를 놀라운 방법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며칠 후, 나는 그분께서 지시하신 대로 넓은 홀을 얻었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2 월의 어느 날 내 목회 파트너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잔, 우리 일행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까지 가는데 경비가 얼마나 들까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2,000 달러입니다.” “음, 만약 봄에 우리가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면, 이제 그 경비로 쓸 돈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가 되었군요.” “탐, 저는 새해 첫날부터 그 부분을 놓고 기도해 오고 있었어요. 하지만 주님은 물론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아직 응답을 받은 적이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또 기도합시다.” 우리는 탐의 방으로 가서 침대 옆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잠시 후 그가 내 등을 두드리더니 말했습니다. “더 이상 기도하지 마세요. 전 예수님께서 2,000 달라를 보내주시겠다고 방금 말씀하셨어요. 4 일 후면 도착할 거예요.” 4 일이 지나고 탐은 우체국에서 돌아와 500달러짜리 수표 4 장을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습니다. “잔, 응답이 왔어요. 예수님께서 이걸 보내왔어요. 우리는 아프리카로 가게 될 겁니다.” 그 돈은 한 친구가 편지와 함께 탐에게 보낸 선물이었습니다. 편지에는 “캘리포니아 주 몬로비아의 한 은헁에 있는데 누군가가 탐 헤즈멀할트 에게 2,000 달러를 보내라’ 고 내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무엇을 보여 주셨든지 간에 이것은 당신 것입니다, 탐.”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나가서 인디애나플러스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일행 모두의 표를 샀습니다. 우리 일행은 우리 가족 여덟 명과 다른 사람 네명으로, 모두 열두 명이었습니다. 아프리카로 갈 표는 구했지만, 다른 경비도 필요했습니다. 내 손에는 겨우 1 달라 50 센트 밖에 없었습니다.
기차가 인디에나폴러스 역을 빠져나갈 때, 내 비서로 일하던 청년이 기차를 따라 뛰어오면서 2달러짜리 지폐를 창문으로 던져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총 3 달러 50 센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역자 중 한명이었던 위니는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까지 우리와 동행했습니다. 그녀에게 미시간 북부까지 갈 표를 사주려면 10 달러가 필요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아내에게 말 했습니다.”디트로이트에 도착하면 위니의 기차표를 사줄 10 ㄷ잘러가 필요한데 나는 돈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필요할 때마다 이러한 관례를 따랐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고 항상 주님께 말했습니다. 디트로이트에 도착하자, 형과 결혼한 누이가 우리를 만나려고 그곳에 와 있었습니다. 남동생 짐도 와 있었습니다. 내가 기차에서 내리자 짐은 나를 끌어안으며 인사했습니다. 함께 끌어안으며 인사했습니다. 함께 역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짐이 “잔,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걸 주고 싶어.”라고 말하며 지갑에서 10 달어 지폐를 꺼내어 내 조끼 호주머니에 넣어 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돌아서서 위니의 표를 사러갔습니다.
나에게는 여전히 3 달러 50 센트가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뉴브런츠의 주의 세인트존스로 가는 기차에서 콩 통조림과 다른 먹을 거리들을 샀습니다. 마침내 리버플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1 달러 25 센트가 남아 있었습니다. 배에서 나는 웨이트에게 50 센트를 주고, 객실 승무원에게도 50 센트를 주었습니다. 영구에 도찰할 무렵에는 25 센트가 내 전 재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