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것이라~~원종수 박사(암전문의)의 간증(1)
과부의 아들이었던 나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시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나타내 주실 때마다 감사할 뿐이다. 지금 나는 어린 시절 드린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삶을 누리고 있다. 복음을 전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수 있다는 것, 그것은 행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셨다. 선교 지에서 평생을 헌신하는 “풀 타임 선교사”, 자기의 재능을 가지고 단기 선교를 다녀오는 “평신도 선교사” 그리고 직접 갈 수 없어 선교사를 후원하고 선교지의 영적 싸움을 기도로 중보하는 “보내는 선교사”등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교 여행을 갈 때마다 감격에 겨워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가난한 사람들,
소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같이 누워 있어도 기쁨이 넘친다. 지붕도 없어 찬 바람을 맞으며 자야 하고, 먹는 것이 비위생적이고 부실해도 나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태국으로 의료 선교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 라우족 마을이었다. 라우족은 떠돌이 부족이었다. 라우족을 생각하다 보니 히브리 족속이 생각났다. 하나님이 택한 히브리
족속은 강한 나라들에게 쫓겨 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라우족에게 애착이 갔다.
라우족은 태국에서도 받아주지 않고, 중국에서도 버림받았고, 라오스도 인정해 주지 않아 정체성을 잃은 버림받음 사람들이었다. 라우족이 산 아래 마을에만 내려와도 사람들이 때리고 침 뱉고 무시하는 족속이었다. 그런 곳으로 나는 의료 선교를 갔다. 치과의사들과 간호사들, 그리고 주일학교 교사들이 동역자였다. 그곳에는 박의식 선교사님이 사역을 하고 있었다. 박 선교사님은 자기 삶의 전부를 그곳에 바친 분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강퍅해져 있어 선교사가 올라오면 불태워 죽이겠다고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일행들도 다소 긴장이 됐다. 선교사님은 그것을 놓고 기도하고 게셨고, 우리에게도 중보기도를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 의료선교단 일행들이 모두 모여 뜨겁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 마을이 복음으로 깨어지게 해주옵소서. 이 마을에 사랑과 평화의 강물이 넘쳐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족속이 되게 해 주옵소서.” 박선교사님과 우리가 함께 들어가서 사역을 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올라오면 불 태워 죽인다는 위협은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닌 듯했다. 그곳에는 경찰의 손길도 미치지 못하고 때로는 게릴라들도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어찌해야 합니까? 먼 이국 땅에 선교하러 왔는데 위협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희 일행을 지켜주옵소서. 저희가 죽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잖아요.”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속에 말씀하셨다. “종수야, 내가 너희 방패인 것을 잊었느냐? 나를 의지하고 믿어라.” 선교사님은 오히려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하셨다.
“가셔서, 어려움 당하시면 저는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합니까? 정말 잘못되어 그들에게 잡히거나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시 생각해 보시죠.”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셔 응답하셨으니 한번 올라가 보죠.” 응답 받은 것은 나였지, 선교단원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서로들 아무런 말이 없어 긴장감만 들었다.
잠시 후,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기도했다. “하나님, 천군천사들 미리 보내주세요, 앞서 보내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상하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만일 불타 죽으면 우리 애들 어떻게 해요. 도와주세요.” 마을 근처에 가짜기 왔는데 라우족 사람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 마을 앞에 다다르자 선교사님이 말했다
“아무도 나아오지 않았네요, 올라갈까요? 말까요?” “올라가십시다.”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런 데 와서 순교하면 하나님이 우리 아들 다 돌봐주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