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모리슨의 아버지를 통하여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배우고 싶습니(2)”~~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서~~
이 글을 읽어보면 우리 나라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오직
공부 공부”하라고 아이들을 몰아세우는데 14 살까지 공부도
못하고 영어도 모르던 한 소년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을 때 불가능한 수준으로 성적을 올린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 있다. 공부를
그렇게 싫어했던 내가 입양된 후 공부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가정이 주는 안정과 행복감 때문이었을까. 싫어하던 수학이 재미있어지고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됐다. 나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올A를 받아온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대학 진학을 앞둔 어느 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가 “스티브,넌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으셨다. “저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요. 우주비행사가 돼 암스트롱처럼 달나라에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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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트에서 지내던 1969년 어느 날,흑백 텔레비전에서 아폴로 11호를 타고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 닐 암스트롱을 본 후 나의 장래 희망은 ‘우주비행사''였다. 우주비행사가
돼 달나라를 유영하는 꿈을 자주 꾸기도 했다. 당시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은 정말 꿈 같은 이야기였다. 그러던 나에게 아버지는 “스티브,넌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으셨다. 아버지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나를 근심스런 얼굴로 바라보셨다.
“스티브,우주비행사는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다. 먼저 신체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어야
한단다.”
그 말뜻을 알고 난 고개를 숙였다. 수술로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한쪽 다리는 정상인의 건강한 다리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러나 금방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괜찮아요. 그러면 인공위성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면 되잖아요.”
아버지는 환한 표정으로 칭찬하시고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다. 고민을
스스로 풀어내도록 인내하시고 기다려 주셨다. 입양 후 나 역시 보통 입양인들처럼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나는 미국인인가,한국인인가?'' 행복하게 살면서도 의문이 생겼다. ‘한국인의 얼굴을 가진
내가 왜 스티브 모리슨으로 살아야 하는가.''
어느 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제 성을 모리슨에서 최로 다시 바꾸면 어떨까요?”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신문만 읽으셨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서재로 불렀다. “스티브,네가 한국 사람이 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그리고 미국
사람이 된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아. 더 중요한 것은 네가 아름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거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거짓말처럼 깨끗해졌다. 명쾌한 대답이셨다. 이때부터
아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평생 고아들을 위해 사셨던 홀트 할아버지,나를 입양해 친자식처럼 길러주신 부모님…. 그들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들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꿈에 그리던
퍼듀대학 우주항공과에 입학했다. 닐 암스트롱이 다녔던 학교였고 우주비행사를 많이 배출한 학교였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남보다 두배 세배의 피나는
노력을 했다. 친구들이 축제 기분에 들떠 있을 때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이런 노력으로 대학생활 내내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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