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교회에서 간증을 한 스티브 모리슨의 간증을 통해 한 영혼이 정말 사랑을 받을 때 변화되는 놀라운 모습을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 나온 이야기를 통해서 깊이 묵상해 보고 싶기에 공유합니다.
~~“석춘아,너 미역국 한 그릇 더 먹어야겠구나.”
서울에 있는 ‘홀트 혼혈아 보이스홈''에서 광성중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보이스 홈 원장님이 들어오셨다. “석춘아,네가 미국으로 가게 되었단다. 홀트아동복지회 소식지에 실린 네 사진을 보고 미국에 계신 어떤 분께서 너를 입양하겠다고 연락을 하셨구나.”
난 당시 14세였기 때문에 입양 가능성이 희박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식지의 내 사진 밑에 ‘이 아이는 14세로 올해가 지나면 입양될 수 없는 아이입니다''라는 문구가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렸는지 11가정이나 나를 입양하겠다고 신청했었다고 했다. ‘내게도 그토록 소망했던 가정이 생긴다니…정말 내게도 엄마아빠가 생기는 걸까?''
그동안 사랑으로 돌봐주신 원장님과 혼자라는 외로움을 씻어주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누군가 나를 데리고 가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친구들은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날 찬송가를 불러주며 축복해주었다.
1970년 5월8일,스티브 모리슨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를 입양한 생물학자인 존 모리슨씨는 1남2녀의 자녀가 있었고 이미 고아 1명을 입양한 가정이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에서 먼저 미국으로 입양된 진남이가 생각났다. ‘그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샌프란시스코 공항은 수많은 사람들도 북적거렸다.출구를 나와 두리번거릴 때 낯선 한 신사가 다가왔다. 첫눈에 봐도 참 좋은 분 같았다.
“Hi nice to meet you! Welcom,my son” (만나서 반갑구나! 어서 와라,내 아들아) 마중 나오신 아버지는 나를 껴안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버지의 품,아버지의 어깨. 모든 것이 아직은 어설프고 낯설었지만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하던 어린 가슴을 풀어주는 데는 충분했다.
아버지와 함께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집으로 갔다. 아담한 집앞에 자동차는 멈췄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원피스에 앞치마를 두른 아름다운 어머니가 달려나오셨다. 그뒤를 이어 형제들이 달려와 인사를 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내게 따뜻한 가정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때 한 소년이 활짝 웃으며 달려와 내 목을 껴안았다. 그 소년은 바로 꿈에 그리던 진남이가 아닌가.
“석춘형! 이제 우리는 함께 살게 됐어,형이랑 내가 드디어 진짜 형제가 된 거라고.”
2년만에 보는 진남이는 여전히 쾌활했고 키가 훌쩍 커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궁금했다. 일단 가족들의 환영파티가 끝난 후 사연을 듣기로 했다. 어머니는 날 위해 특별히 한국음식을 만드셨다. 양배추로 김치를 담가주신 것이다. 낯선 땅에서 향수를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 어머니의 따뜻한 배려였다. 어머니는 내게 가족의 일원이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우리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말씀했다.
제임스란 미국 이름을 갖게 된 진남이가 큰누나 론다,둘째 누나 셰릴,막내인 마크를 소개했다. 제임스는 내가 이 집으로 오게 된 사연을 말해주었다.
동생 제임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마치 소설과 같았다. 제임스를 입양한 부모님은 또 한 명의 한국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아버지와 어머니가 한국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보내온 소식지에 실린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어떤 아이를 입양해야 할지 고민하셨다. 1969년 11∼12월호 소식지에는 보이스카우트 유니폼을 입은 내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눈길이 내 사진에 멈췄다.
“여보,바로 이 아이야.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이야. 나는 결정했어.”
그러나 어머니는 내 나이가 너무 많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굽히지 않으셨다. 의견이 다르자 어머니는 2년전 홀트에서 입양한 제임스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그때 그토록 그리워하던 석춘이 형의 사진을 본 제임스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를 입양하세요. 제가 너무 좋아했던 형이에요”라고 말했다.
당시 11가정이 날 입양하겠다고 신청했는데 아버지에게 입양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생각한다. 한 아이를 입양하려면 정부 기관으로부터 아이를 입양해 키울 수 있는 가정인지를 심사하는 ‘가정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다. 그러다보면 내 나이가 많아져 입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홀트에서 제임스를 입양할 때 가정조사가 끝난 모리슨씨 가정으로 결정한 것이었다.
입양된 후 하루하루가 꿈처럼 흘러갔다. 집에 돌아가면 반겨줄 부모와 형제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또 어머니는 아버지를 리더로 존중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서로 위하고 사랑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또 입양의 기쁨이 크다는 것을 부모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시설에서 자라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모든 아이들에겐 가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런 생활이 바로 천국이야.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가정이 필요한 아이를 입양해 사랑으로 돌봐야지.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입양된 지 얼마 후 다리 수술을 받았다. 어린 시절 높은 데서 뛰어내린 후 어긋난 후 붓기 시작해 펴지지 않던 다리. 6세 때 홀트복지회에서 수술을 받게 해줘 똑바로 설 수는 있었지만 구부리지는 못했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 많은 돈을 들여서 수술을 해주셨다. 마음대로 걷고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자유로운 육체를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