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누 간증문>
홀리네이션스의 후원 장학생으로 인도에서 온 보이누는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얼마전에는 40 일 금식기도를 마쳤고 그동안에 걸어온 길을 자세히 써서 함께 나눕니다.
이사야 55:8~9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은 사람의 생각과 방법과 다릅니다. 사람은 오직 생존과 성공에 골몰할 뿐이며, 문제가 없을 때는 가난이나 질병, 실패와 죽음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저의 이런 생각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으며, 오늘 이것을 말씀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길을 바꾸셨습니다.
저는 10살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 은혜를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12학년을 마치자마자, 저는 간호사가 되어 열심히 선교 사역을 후원하기로 했어요. 그 때 열린 한 유년부 여름성경학교에 참석했고 찬양사이자 복음전도사로 참여했던 에반 앙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모시면서 복음 전도에 전념하는 청년이었습니다. 친구들이 그의 처지와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 신부감으로 저를 지목하고 권했습니다. 저는 간호사가 될 계획이었으므로 그 제안에 매우 당황했지만, 이사야 55:8~9절이 떠올랐고, 치매에 걸린 그의 어머니에 대해 하나님께서 제게 ‘나는 네가 그의 아내가 되어 선교사 노릇을 하기 바란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부모와 가족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과 초조함이 찾아왔습니다. 게다가 이 일을 알게 된 부모님이 강력히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기에 이 결혼을 승낙하는 것이 옳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렸어요. ‘어머니, 아버지! 이 결혼은 어느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이니, 모두가 행복해 질 것을 믿고 승낙해 주세요.’ 하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반대하셨지요. 저는 더욱 더 하나님의 뜻이라면 부모님이 승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부모님은 승낙하셨고, 2003년 7월 모든 전통의식을 갖춘 결혼식을 했습니다. 드디어 저는 신실한 선교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2. 제 생각보다 일찍 아기를 갖게 하셨습니다.
저는 남편의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저는 남편을 따라다니며 찬양하고 아기들을 돌보며 아이들에게 노래와 성경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2달이 되자 아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기뻐하기는커녕, 남편을 따라다니며 노래와 성경을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에 몹시 우울했어요. 하나님은 제게, ‘불임으로 슬퍼하는 여인들이 많은데, 아기를 가진 축복을 잊고 슬퍼하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이 말씀에 저는 무릎을 꿇고 주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빨리 아기를 주신 축복에 대해 불평만 해댄 것을 회개했지요.
그러자 하나님은 제게 왜 그렇게 빨리 아기를 갖게 해주셨는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치매인 시어머니와 소통이 어려운 저는 남편이 집에 없을 때 몹시 힘들었는데, 아기가 태어나면서 집이 따스하고 즐거운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제게는 우리 아기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좋은 친구가 되어준 것이지요. 처음에는 우울했던 아기 소식이 제 삶에 가장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3. 평생 선교사로 만드셨습니다.
치매인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매우 힘들었지만, 선교사로서의 소명으로 열심을 다했습니다. 2010년 3월 27일, 어머니는 소천하셨고 저는 이제 선교사 역할과 짐을 벗었다고 생각했지요. 남편은 이곳저곳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바빴지만, 어머니 장례를 치르러 왔고, 장례가 끝나자 제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예수님의 사랑으로 어머니를 돌보아드렸다. 이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힘을 얻어 저는 예전에 생각했던 것, 즉 남편과 함께 다니며 복음을 전할 생각에 얼마나 기뻤는지요! 저는 찬양단에 합류하고 기도 프로그램에 들어갈 생각에 마음이 들떴습니다.
3일 후, 남편은 미얀마에서 이루어질 전도 프로그램을 위해 집을 떠났는데, 예정된 첫 설교 제목이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나의 목숨조차 아끼지 않으리라’였습니다. 그는 예언처럼 어디서 죽든지 그곳에 묻히겠다는 말을 하고 떠났지요. 또 캠프 동역자들에게 캠프 마지막 날인 토요일이 아니라 금요일에 떠날 수도 있다는 말을 해서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고는 정말 금요일 아침에 천식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날은 2010년 4월 16일,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겨우 19일 후였지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2010년 1월, ‘열심을 다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였어요. 그는 아프리카를 위해 몸을 바친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존경하며 그분처럼 살고자 했는데, 정말 잃어버린 영혼은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그리고 미얀마의 목사님은 그가 생명을 읽은 자기 시신을 고향으로 보내지 말라고 했다고 전해주었어요.
남편은 미얀마의 삼림지역 깊은 곳을 도보로 다니면서 어떤 일이든지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그는 목사님께 혼자 복음을 전하겠다면서 만일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시신을 고국인 인도로 운구하지 말 것을 부탁했답니다. 장례식도 치를 필요 없이 죽은 곳에 그대로 묻어달라고 했다고 해요. ‘죽음 후에는 망자에 대한 감상에 빠져 우울해 하지 말라, 다만 귀한 사랑을 전할 뿐.’
이 모든 일을 겪은 저는 남편에게 마음으로 물었어요. ‘당신은 지금 어디 있나요?’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을 이해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깨닫자 기쁜 마음이 들며 주님께 외쳤어요. ‘하나님, 순종하겠습니다. 저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저는 그때 막내 아이를 분만해야 해서 미얀마에서 치러진 남편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시어머니를 위한 선교사 역할을 끝났지만, 19일 후 남편이 돌아간 날, 저는 평생 선교사로 부름 받았음을 깨달았어요. 이후 연약한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이어져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저를 더 강하고 단단하게 하시려고 그런 시련을 허락하셨던 겁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제 시야가 넓어지고 주님께만 시선을 고정하게 되었어요. ‘제게 용맹한 영적 전투력’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때 우리 아이들은 각각 6세, 3세, 그리고 1년 6개월이었어요. 닥친 현실이 꿈 같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지요. 주위에서도 시어머니와 남편이 죽었으니, 이제 어린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개중에는 저를 저주받은 인생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저도 당신에는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나에게 더 좋은 미래를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고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더 자라났어요.
4. 신학 공부를 하게 하셨습니다.
남편 친구들을 비롯하여 저를 사랑하는 분들이 제게 신학을 공부하라고 권했지만, 저는 ‘주님의 뜻이면 가능하겠지요.’라며 웃어넘겼어요. 그런데 정말 2016년 마니푸르 소재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뻤어요. 하지만 기쁨은 잠시 뿐, 이듬해인 2017년 1월 4일, 둘째의 익사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들이 죽었는데도,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유혹에 저는 ‘나는 하나님을 위해 일할 운명이고, 주님은 내게 힘을 주실 거야.’라고 대답했어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주님과 동행하며 그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의 여정은 축복입니다. 저는 주님은 신실하시며 합하여 선을 이루심을 아니까요.
졸업하기 직전, 저의 오빠로부터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저 역시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한국에 가서 신학공부를 더 깊이 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기숙학교에 보내보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저는 아이들을 그곳에 보내며 주님의 인도와 지혜를 구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2019년 5월 31일, 석사 학위를 받았고,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한국에 와서 신학공부를 이어갈 준비를 했습니다.
한국 입국을 위한 절차는 1~2개월 만에 끝났고, 저는 서울에 있는 KC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애초에 저는 신학을 전공할 생각이었으나, 지금은 전공 분야를 넓힐 꿈을 갖게 되었어요. 하나님을 신실하시며 언제나 제게 좋은 것을 준비해 주심을 아는 저는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보여드리는 최선의 방법’임을 배웠기에 주를 높이며 따라갈 것입니다.
<제가 늘 기억하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선교 후원자가 아니라 선교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은 나의 결혼에 있어서 필요 이상을 공급하셨다.
3. 내 계획은 결혼 2~3년차에 아기를 갖는 것이었으나, 주님을 1년 반 후 아기를 안게 하셨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린도전서 1:25)
4. 나는 일시적으로 선교사 노릇을 하려고 했으나, 하나님은 나를 평생 선교사로 만드시는 중이다.
5. 신학 공부의 학위는 일평생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한 것이다.
6. 우리 삶의 모든 일들은 합하여 선을 이룬다.
7.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계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
8. 우리의 고난은 모두 장차 얻을 선한 결과를 위한 것이다.
9.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지도 않게, 신실한 주님은 언제나 정확한 때를 아신다.
1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11.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신명기 31:8)
12.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시편 14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