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쁨을 주심으로”
김인강교수님의 기쁨공식의 감동이야기를 더 공유합니다.
시30:11-12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이 말씀 그대로 온 가족이 환하게 웃은 가족 사진은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누가 봐도 거지밖에는 될수 없는 나였다. 비료 부대위에 앉아 바닥을 기어다니던 내게 상상 할수 없는 축복이다. 내게 아내가 있고 두 아이가 있다는 것이 어느 땐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집도 있고 직장도 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볼 때마다 매일 고맙기만 하다. 우리를 남편과 아내로 같이 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자라나는 두 아이의 부모로, 교회 집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우리는 평생을 동고동락하며 부대끼리라. 그런 인생의 여정에 사랑하는 친구요 동역자를 주셨으니 감사할뿐이다.
어린 시절 두 발을 사용하지 못하기에 한번도 소풍을 간적이 없다. 믿음을 처음 받아들받아들인후 어릴 때 나를 갖다 버리라고 매일 술주정을 하며 우리 가족을 괴롭히던 아버지를 용서하는 일과 나를 보고 놀리던 아이들도 용서했다. 그러고 나서야 웃음이 회복되었다. 막혀있던 기쁨의 샘들이 터졌다.
나를 새 인생을 살게 하시고 이렇게 축복해주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매일 묻는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경건함이다. 내가 일생 가이드가 된 성경은 다니엘서다. 대학에 다닐 때에는 바벨론 왕궁의 진미를 거부한 그를 따라 술과 담배, 커피와 연애를 스스로 금하고 신앙생활과 공부에만 전진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고지식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을 가진 다니엘의 순수함을 따라가고 싶었던 나의 결심을 하나님은 받아주셨다.
믿음이 무너질 때마다 영혼을 숫돌에 가는 심정으로 다니엘서 6 장을 읽는다
두번째 내게 묻는 것은 순결함이다. 다니엘을 고소한 총리와 방백들은 그에게서 신앙이외에는 아무 허물을 찾을 수 없었다. 다니엘의 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더욱 기를 쓰고 우리의 허물을 찾으려고 한다. 그것도 거의 예수님과 같은 수준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런데 그들이 찾을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허물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밖에 없다면 이 얼마나 영광스런 죄목인가? “단6:4-5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 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실망스럽게도 최근 조사에 의하면 개신교회 신뢰도가 카톨릭이나 불교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부터 회개하며 매일 스스로 점검한다. 아무리 지혜가 많고 높은 지위에 있고 믿음이 좋아보여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쓰지 않으신다. 순결함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윤리적인 삶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산제사일 것이다. 이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윤리문제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세번째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니엘은 지혜가 뛰어났다. 벨사살 왕은 그에게 이렇게 평가했다. “단5:14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 하나님을 믿는 청년들이 신앙생활과 공부에 시간을 집중한다면 당연히 우수한 학생이 될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한 한낱 작은 자다. 낮은 자리에서 사회의 냉대와 차별,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한 적이 많았다. 같이 공부를 하던 동기들 중엔 참으로 똑똑한 이들이 많았다. 때로는 그들에 비해 나의 능력이 너무도 적다는 생각에 우울해지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성실하게 공부하되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할수 있는 만큼 행하며 내가 가진 만큼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인도에 가서 마더 테레사를 만나서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을 질문했다. “수녀님이 이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병든 자를 돌보신다고 세상이 얼마나 바뀔 것 같아요?” 그것은 사실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하나님의 큰 은헤를 체험한 자로서 나는 의로운 부담감이 있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더 큰 일 더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다. 그런데 인도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거대한 부조리 앞에 나의 존재는 한없이 작았다. 길거리에서 자고 먹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죽어가는 인도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쉼터에서 병자 몇 명과 죽어가는 몇 사람을 돌보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수녀님은 편안한 얼굴로 대답하셨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내 몫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작은 일에 충성할 뿐이지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