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핖피핀에서 웬디의 진심어린 감사편지”(1)
필리핀에 웬디하고 같이 지낸지가 10 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일들이 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2010 년 4 월 우리 딸의 애기는 딸을 출산할 예정이고 필리핀에서 온 웬디의 뱃속의 아기는 아들을 출산할 예정이었습니다..
딸하고 둘이 가서 여자아기의 옷을 구입하면서 웬디의 아기를 위하여 남자아기의 못도 구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웬디의 생각을 많이 하는 날이었습니다. 특히 웬디가 제 생각을 자리 잡은이유는 웬디는 저희 딸과 같은 나이이고 출산예정일도 같기 때문입니다.
웬디는 키가 작아서 8 개월 임신 한 모습을 보면 마치 앞으로 넘어질것 같습니다. 웬디를 생각하며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웬디는 몇년전에 한국에 도착하는 날부터 수난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에 돈을 벌러 온다고 푸른 꿈을 가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던날, 같이 세명의 필리핀 친구들과 한공장에서 일을 하기로 되어 있던 공장주는 사업을 문닫은것을 알았습니다.
비자를 받고 초청을 해서 사업을 할 예정이었던 그 중소기업이 망한것입니다. 얼마나 앞이 캄캄했을까를 상상할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공항에서 노동부 산하 고용센터가 우리 선교회 전화번호를 알고 연락을 해서 이런 사연들을 이야기 하고 저희 쉼터에 묵게 해 줄수 있느냐는것입니다. 그 세명은 그렇게 쉼터를 왔고 그곳에서 묵으면서 고용센터를 통하여 다른 공장으로 직업을 가질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바로 아기의 아빠가 될 베트남 남자를 만난것입니다. 외로운 외국인들은 쉽게 그렇게 이성에 노출된 상태입니다. 베트남 남자는 이십대의 아주 어린 남자인데 한국어도 영어도 서로 통하지 않는데 늘 웬디 방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교제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공장에 갈때 마다 웬디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의를 주었지만 남녀가 자주 보게 되면 당시에는 아무것도 들리지가 않고 임신을 하게 된것입니다.
처음 직업을 갖게 해 주었을때 밝게 교회를 나오던 웬디는 그후 교회에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들은 어렵고 힘들때마다 아버지집으로 돌아온 탕자와 같이 찾아오는것입니다. 유달리 심하게 입덧을 하여 토하고 쓰러지는 몸으로 찾아와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영양주사를 맞게 해 주었습니다. 웬디는 아기 아빠와 필리핀에 가서 살겠다고 하며 아기를 출산하고 한달만 있다가 아기 혼자 외할머니에게 맡겨서 양육을 시킬 계획입니다.
한국에 나온 외국인들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한국에 나오기가 힘들고 먹고 살기가 어렵기에 보통 애기를 출산하면 그런 식으로 합니다. 전에도 중국부부가 출산 예정일 가까운 날에 도움을 받기 위해 교회 근처에 방을 얻고 출산을 하였습니다. 물론 병원비와 출산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 애기 이름을 예수님을 찬미하자는 뜻으로 저가 예찬이라고 지어주어서 그 아기는 예찬이가 되었습니다.
웬디도 그와 같은 길을 가게 될것입니다. 저는 뱃속의 아기가 엄마를 떠나 다른 필리핀 친구의 도움으로 외할머니 손에서 외롭게 키워질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뿐만 아니라 웬디는 같이 대화를 나누었는데 출산후에 혼자 조리를 할수가 있다는것입니다.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나면 다시 공장에서 일을 하겠다는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가 필요할때마다 윤권사님이 데리고 갔습니다. 그 모든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남자 아기가 태어날 날을 생각하며 핑크색 옷대신 파란색 옷 한세트를 집으며 아마 그옷을 입고 필리핀으로 어린 심령이 두려운 마음으로 떠날것을 생각하며 홍콩에 한국보다 훨씬 많은 필리핀 여성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후 돈을 열심히 벌어서 애기를 돌볼 친정엄마에게 전부 돈을 부쳤는데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는데 웬디는 잡혀도 돌아가게 되었고 막상 필리핀에 가보니 친정 엄마는 돈을 전부 다 써비리고 빚만 지고 살길이 막막한 상태에서 우리는 웬디를 살려주기 위해 공부를 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생활비도 지원하여 그 돈으로 친 동생도 같이 살수가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다음에 감사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여러분 모두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필리핀에 있는 웬디 헤르난데즈입니다. 이번에 필리핀 소재 장로교 신학대학 과정을 모두 마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더불어 이 과정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홀리네이션스 가족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를 믿어주신 주신 두 ‘엄마’, 마마킴과 윤권사님, 고맙습니다. 제가 낙담하여 머뭇거릴 때에도 망설임 없이 제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고 밀어주셨지요. 이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저를 선택하여 비자를 비롯한 여러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용기를 주셨을 뿐 아니라, 더 좋은 신학대학을 찾아 공부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셨습니다. 그 이후의 도움은 말할 나위가 없을 정도이고요.
4년 전, 저는 완전히 진이 빠져 있었습니다. 상처 받고 외로웠으며, 빚에 눌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상태였어요. 고단한 삶과 시련으로 인해 주님에 대한 믿음조차 잃어 살아갈 용기가 없었습니다.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 대한 믿음도 사라진 상태에서, 유일한 삶의 이유는 혼자 길러야만 하는 아들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암송하며 붙들고 있던 말씀이었지요. 오직 주님의 그 약속을 믿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면 어떻겠냐는 마마킴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중동지역의 일자리를 구하려고 지원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곧 마음에 갈등이 오면서 과연 어린 아들을 혼자 두고 외국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마마킴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재정적 도움을 취하려고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어요. 이 모든 생각들로 마음이 몹시 어지러운 중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정말 제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저를 인도해 주시고 주님 뜻에 합당한 결정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