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줄 모르는 삶 자체가 벌입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너도 나도 느끼면서 만든 속담은 실지 경험을 통해서 나온 것이기에 모두가 너무나 놀라운 속담을 보게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까 보따리 달라고 한다” 우리는 이 속담을 누구나 다 알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 자신을 잘 모릅니다. 우리 주님은 죄인을 위해서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해 보이셨습니다. 한데 그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한다면 우리는 “보따리 달라”는 요구가 참 기도가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정상입니다. 그렇게 늘 요구만 하고 감사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이미 사랑을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반문을 하십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 사랑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감사로 기도를 시작할것입니다. 그렇게 감사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이미 성경에서 감사기도의 능력을 우리는 죽게 되어 있는 다니엘도 사자의 입도 막는 능력을 보았고 고래뱃속에서 죽을 운명인 요나도 감사할 때 고래는 뱃속에서 토해 놓았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면서 감사습관이 몸에 밴다면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능력있는 기도가 될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습관은 늘 생각을 감사하는 생각으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어로 “think생각하다” 에서 “thank”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식구조는 얼마만큼 감사가 훈련이 되었을까요? 한번 체크 해보면 우리 삶의 행복지수가 달라질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전광목사님 평생감사에서 기록된 글입니다)1890 년 9 월, 미시간 호수에서 레이디 엘진 호라는 유람선 한 척이 임초에 부딪쳐 침몰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약 400 여명에 이른 승객들은 대부부분 주방위군 부대원과 그들의 가족들이었습니다. 배안에 타고 있던 많은 사람이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생존자들은 구명정이나 배에서 부서져 나온 조각에 몸을 의지해 여섯 시간 동안이나 물에 떠 있었습니다.
구조대로 선발된 사람 중에는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신학생인 에드워스 스펜서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대학 수영 선수였던 스펜서는 온 힘을 다해 서른 명의 생존자중 열일곱 명을 구출하는 기적같은 일을 만들었습니다. 연일 언론에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구한 그의 영웅적 행동을 대서특빌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몸을 너무 무리하게 움직인 나머지 그 후유증으로 거의 전신마비 상태가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며 자신의 목회자이자 신학도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스펜서를 한 가지가 만나 물었습니다. “그 당시에 목숨을 구해 준 열일곱 명 중에 몇 명이나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스펜서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단 한명 뿐이었답니다. 나머지 사람들의 소식이 나는 궁금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찌 그런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많을까?” 하며 혀를 쯧쯧찹니다. 하지만 우리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요? 항상 어려운 일에 부딪치면 평생 주님만 믿고 따르겠다며 도와 달라고 간청하다가, 일이 잘 풀리면 그런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감사를 잊어버리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프엡스키는 1864 년 지하에서 온 편지에서 인간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습니다.
“인간이 바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터무니없을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르는가? 이상할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른다. 사실 나는 인간에 대한 최고의 정의가 ~감사할 줄 모르는 두발 달린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벌하는 법은 없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삶 자체가 벌이기 때문이다 ~라이피 곱스”~~
감사하는 삶의 습관!!!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수 있고 사람의 마음도 얻을수 있는 너무나 중요한 감사로 행복지수를 높일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