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10: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눅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눅10: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눅10: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10: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행복동에 학생들을 많이 보내주셔서 전부 50 명도 넘는 학생이고 자국으로 돌아가고 현재 있는 학생만도 10 여명이 되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당분간은 새로오는 학생은 받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한명의 장학생에게 들어가는 일년에 두번의 학비와 매달 지급해 주는 생활비가 많이 들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쉼터에 같이 숙식을 하면서 행여나 코로나가 쉼터에 퍼지면 24 시간 문을 열어놓고 외국인들을 받아주는 쉼터가 문을 닫아야 하고 현재 있는 학생들도 갈곳이 없어지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한데 미얀마에서 30 대의 젊은 친부 목사님이 우리 외국인 에배에 참석을 하였고 우리 선교회에 오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현재 받을 수가 없다고 전했는데 기도를 하면서 주님은 그 학생을 받는 것이 좋은것이라는 생각을 주셔서 두주전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새 학생을 또 받게 되었습니다.
이 학생은 온자 얼마 안되었는데 화,목,토요일 기도회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느낀점을 전해왔는데 왜 주님이 그 학생을 받을 마음을 주셨는지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도 느꼈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0 장을 읽으면서 왜 예수님께서 하필이면 강도만난사람을 피해서 다른 길로 지나가는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비유하셨을까? 모두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만 모인 자리에서 나누웠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에 “요일3:17-18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 말씀이 주시는 의미를 묵상하자고 했습니다. 친부 목사님은 자신이 느낀점을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이 고백을 듣고 참 기뻤습니다.
“마마, 이제부터는 전보다 더 신실한 예수님의 종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한국에 오기전에 미얀마에서 목회를 할 때 매주 토요일 금식기도를 하였고 때때로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하였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신대로 나는 말과 혀로만 사랑했습니다. 이것은 신실한 종이 아니었다는 것을 홀리네이션스에 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얀마에 가난한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내 눈에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들은 제대로 충분히 먹지도 못하고 돈이 없어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 내 가족만 기도할것이 아니라 미얀마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고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사랑으로 키워주며 교육을 시키겠다고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누가복음 10 장 30-37 절 말씀을 들을 때 내 가슴을 뒤흔들며 미얀마에 고아들이나가난한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병원에 한번 가지 못할 때 마치 강도 만난 이웃을 피해서 가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이었다고 느꼈습니다.
홀리네이션스를 통하혀서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고 지시하신다고 느꼈기에 이곳에 온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어떻게 미얀마에 돌아가서 섬겨야 할지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 예배실에서 의자에 앉지 않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학생들의 진진한 모습을 외부인들이 와서 보면 두시간을 어떻게 그렇게 기도할수 있느냐고 질문을 하곤 합니다. 성령이 우리의 기도를 인도해 주실 때 우리 모두는 기도의 특권이 무엇인지를 배워 갑니다. “내 기도 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찬양하며 기도하고 순종하는 행동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이 참 바른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