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선한 만남은 참 놀랍습니다”
서울 신학대학권 부총장님을 역임한 조갑진부총장님은 은퇴후 조지뮬러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그곳에 원장님이 되셨습니다. 지난달에도 가서 특강을 하였고 이번주에도 또 특강을 할 예정입니다. 지난달에 갔을 때 처음 조갑진 원장님을 만났던 그날이 떠올라서 질문을 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서 1987 년에 우리는 홍콩에서 귀국을 하고 90 년에 다시 홍콩으로 가게 되었는데 87 년에 귀국을 하고 그날은 고등부예배때 저가 홍콩에서 선교를 처음 시작한 간증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교육담당 목사님이셨던 조갑진목사님께서 각부서별로 에배드리는 모습을 뒷문으로 들어와서 살펴보고 나가셨습니다. 중앙성결교회는 대형교회이기에 교인들끼리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다수는 서로 모릅니다. 조목사님은 그날 저를 처음 보았고 저도 귀국한지 얼마 안되어서 목사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렇게 뒤에서 문을 열고 잠시 에배를 돌아보시고는 당시에 대학부 부감을 선발해야 하는데 대학부가 교회 규모에 비해서 좀 부진한 상태여서 부감을 누구를 뽑느냐를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학부 임원들 8 명은 특별히 기도를 하면서 새로 좋은 부감이 선택되어 대학부를 부흥시기기를 기도하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누가 소개를 시킨것도 아니고 그날 뒤에서 처음 보았고 부감은 보통 나이가 더 지긋한 남자중진들을 뽑아서 임명을 했는데 대학생 남학생들이 주로 구성된 모임에 나이가 40 세밖에 안되고 경험도 한번도 없는 전혀 부흥을 시킬 가능성은 커녕 학생들에게 별호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여자 집사인 저를 조목사님은 그날 뽑아주셨습니다.
그때일을 기억하면서 지난번 조지뮬러 아카데이에 가서 어떻게 그런 모험을 하시면서 저를 지명하셨는지 웃으면서 여쭈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촛점을 맞추는 사람은 주님의 음성에 먼저 귀를 기울입니다 그것은 순종의 삶을 살려는 결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세속과 인본주의를 멀리하고 좁은 길을 걸으려는 결심 때문입니다 철저히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고 선포합니다 하늘 보좌 오른편에서 간구하시는 주님앞에 설 날을 생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부르신 그 주님의 뜻이 오늘도 동역자들의 삶의 시간과 공간속에서 이뤄지는 은혜의 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저는 자신이 너무나 부족한 것을 알기에 그해에 철야기도 하는날은 밤 9 시부터 다음날 새벽기도 마치는 시간까지 기도하고 대학생들에게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위해 열심히 성경공부를 먼저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맡기고 대학부를 인도했을 때 대학부는 금방 40 명이 되었습니다. 그해의 경험은 정말 잊을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 다음해에 청년부도 기도하면서 기쁘게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조목사님은 서울신대원 교수님직분을 맡았을 때 우리 외국인 학생들을 많이 그곳에 입학하도록 도와주셨고 지금 네팔에서 슈랜드라 목사님과 메뉴카 사모님이 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데 메뉴카 사모님이 비자를 받고 올수 있도록 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메뉴카사모님은 재정보증 입학허가서 모든 것을 전혀 하자가 없이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대사관에 비자를 받으러 갔는데 면접도 안보고 그냥 비자를 퇴짜받고 대사관 문전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남편 슈랜드라 목사님은 당시 재학중이었는데 마침 조갑진교수님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슈랜드라 목사님은 얼굴이 수심에 찬 얼굴로 수업에 들어가니 왜 얼굴 표정이 그렇냐고? 물어보셔서 상황을 설명하니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네팔로 국제 전화를 대사관으로 걸어서 막 따지니까 바로 가고 있는 메뉴카 사모님을 전화로 오라고 해서 비자를 주어서 네팔에 그렇게 멋진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서울 신대원에서 근무하실때는 서울신대원 체플에 수시로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시고 조지뮬러 아카데미에서 도 수시로 기회를 주셔서 처음 대학부 부감을 불러 지명해 준것같이 30 년이 넘도록 주선을 해주십니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선하신 만남이었던 것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