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그리스도인은 한 나라의 역사를 바꿉니다.~윌리암 홀, 로제타 홀, 샤워드 훌 가족의 이야기(4)”
한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는 가장 가까운 항상 바라보고 있는 가족이 평가하는 점수가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진실한 평가일것입니다. 아들 샤워드 홀은 어머니 로제타 홀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어머니 닥터 로제타 홀은 한국에서 43 년간에 걸쳐 의료 선교봉사를 섬기셨다. 어머니는 나의 소년시절과 성인시절 내게 귀감을 주시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의지하는 믿음은 우리가 살면서 피하지 못할 위기와 여러 도전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것(어머니의 경우 젊은 남편과 어린 딸을 잃었다)과 같은 극심한 슬픔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게 한다는 사실을 친히 모범을 통해 보여주시고 그 지혜를 나누어 주셨다. 개인적인 고통으로 들끓기 쉬운 처지였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한 치료의 봉사로 그 자리를 채워 넣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미래에 닥칠 어떠한 불확실성도 주님이 주신 약속만을 의지하며 나아가면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삶을 통해서 참 그리스도인의 섬김을 보고 배울수 있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우리 모두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로제타 홀은 정말 끔찍한 환자를 대하는 모습은 그의 일기에서 읽기만 해도 감동이었습니다.
“어제 상태가 매우 나쁜 환자를 입원시켰다. 한쪽 귀에서부터 다른 쪽 귀까지 머리가 갈라질 정도로 부스럼이 너무 심했는데 고통과 허물이 머리카락에 엉켜 붙어 있었다.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오기 전, 대기실에 있을 때부터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나는 그녀의 병이 아주 심한 자궁암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썩은 피부를 모두 절제하고 소독하고 드레싱했다. 너무 오랫동안 그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이미 눈두덩과 얼굴에는 심한 부종이 생겨 있었다. 어떤 상태이든 나는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머리에서 풍기던 냄새도 이젠 거의 사라졌다. 그녀는 훨씬 편안해 졌다. 나는 조선과 조선인들, 그리고 이 일을 무척 사랑한다. 나를 이곳으로 보내준 하나님께 감사하다.”
조선에 가장 낮은 계급의 집안의 여성들이 우리나라 1 세대 여성 리더들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로제타 홀 같은 여성 선교사들이 조선을 찾았던 결과입니다. 미국에서 최초의 여성을 위한 대학 과정인 마운트 홀요크 여자 신학교를 세운 메리 라이언은 “인류를 위해 봉사하려거든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곳에 가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일을 하라” 라는 연설문을 읽고 로제타는 한국을 처음 찾아서 왔을 때 바퀴 달린 물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던 곳이었습니다. 가마를 메고 다니고 여성들은 밖에 외출을 하지 않고 글도 읽지 못하고 아파도 치료도 못받던 그런 여성들을 완전히 인생을 바꾸어 놓은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일찍 떠나보냈을 때 어린이 병동을 세우는데 그때 시작된 건축헌금은 로제타 홀의온 가족이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받지 않는 대신에 그 돈을 모두 어린이 병동을 세우기 위해서 한국으로 보내온것입니다. 사랑하는 딸이 이질에 걸려 죽게 된 원인이 대동강에서 길어오는 오염된 물이었기에 어린이 병동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시멘트로 만든 물 탱크를 갖게 되었고 깨끗한 물을 어린이병동에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병동의 한 쪽에 한국에 최초로 맹인 소녀들을 위한 교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후 평양 맹아학교 10 주년을 맞이했을 때 로제타는 그동안의 교육성과를 소개하며 특수 교육 홍보를 위해 바자회와 공연을 준비했는데 이 공연에서 맹인 소녀들이 한글과 영어를 읽고 쓰고 뜨개질을 하고 오르간을 연주하며 찬송가 부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로제타는 “평양의 오마니”로 불리웠는데 조선 여성을 해방시켰다 해서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과 비유되었습니다. 신실하고 열정적인 봉사로 일관된 수십만명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질병의 고통과 시달림으로부터 벗어났으며 로제타의 고결함과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모습으로 인하여 그들 중 수쳔명은 예수님께로 인도 되었습니다. 수 많은 조선인들 사이에서 크나큰 존경과 사랑으로 로제타 홀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1890 년 8 월 조선으로 오는 첫 여정을 시작하며 로제타는 예수님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가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아무리 더러운 질병이라도 환자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친절했으며 난산에서 많은 여성들의 목숨을 구했고 여성 의료인들을 양성했습니다. 로제타의 친절한 손길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님에게로 인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