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4)~~임현수목사님저서
“92세 청춘 선교사”
이 연세의 멋진 선교사님 이야기는 나이 들어서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너무나 큰 소소망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내 인생을 운전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께서 운전해 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좌절과 실망과 혼란에 빠지는 이유는 자기가 자기의 주인 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시면 우리는 평화롭고 기쁨이 있으며 의롭고 질어 있는 사람을 살게 됩니다.”
북한 사람들은 몸 속에 담석이 많다. 내가 감옥에서 밥을 먹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돌을 골라내는 거였다. 어떤 날은 네 번이나 돌을 씹기도 했다.
나진 양로원에서 사역하던 전종석 할아버지 선교사님은 북한 주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이 담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혼자 모금을 해서 담석 제거기 한대를 나진 신흥병원에 기증했다. 그 덕분에 수백 명이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 기계는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전 선교사님이 15,000 달러 정도하는 기계를 하나 더 사들이면서 그 병원은 담석으로 고통 받는 북한 사람들을 많이 고쳐주었다. 전종석 할아버지는 청진이 고향이었다. 그래서인지 북한 선교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나를 찾아왔다. 그는 70 세쯤 우리교회에 등록했다. 그리고 아내의 중병이 고침 받은 것을 계기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했다. 평생 운수사업을 하면서 배운 술과 담배도 다 끊고 성경공부와 전도 훈련과 제자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3 년후 북한 이탈 주민들이 중국으로 대거 넘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하여 북한 구제 선교사가 되었다. 이미 일흔이 넘었고 직분 자도 아니라 교회에서 정식 선교사로 파송할수가 없어서 내가 개인적으로 중국에 파송하며 어려운 탈북자들을 돌봐주기를 부탁했다. (이후 우리 교회 당회에서는 전 선교사님을 명예장로로 추대했다).
그후 여러 교인들이 탈북 동포들을 돕기 위해 연길을 수차례 방문했다. 당시 정종석 선교사 부부는 연길에 살면서 탈북자들을 돕고 있었다. 한참 탈북자가 많이 넘어올 때 약 400 가정의 탈복자들에게 집을 얻어주고, 양식과 연탄을 사다 주면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밤낮없이 봉사했다. 어느 날은 그의 집에 가보면 자기들은 감자를 삶아 먹으면서 북한 사람들에게는 쌀밥을 먹이고 있었다. 그가 중국의 한 양로원에서 명예원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북한 관리들이 찾아와서 북한에 들어와 양로원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20 년을 북한 선교사로 살면서 노년의 삶을 주님께 모두 드렸다. 그는 나진을 중심으로 평양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노인 사역을 잘 감당했다. 그러자 평양에서 기자들이 몰려와 나진양로원을 모범 양로원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나진에 양로원과 탁아소 세곳을 세웠고 희령에도 양로원을 세웠다.
필라안디옥교회의 호성기목사님은 이분을 꾸준히 도와서 수년 동안 노인들의 양식을 성실하게 돌보아 주었다. 그 교회 노인들이 나물을 캐서 팔아 헌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전 선교사님 부부는 내가 북한이 억류되었을 때 가장 기도를 많이 해주었고, 석방되어 교회로 돌아왔을 때도 기쁨의 눈물을 정말 많이 흘렸다. 이들을 통해 약한자를 들어 크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첫사랑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신다. 2018 년, 92 세인 전종석 선교사님은 아직도 그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하나님께서 건강의 복을 더해주셔서 운전도 할수 있고 정신도 매우 건강한 상태이다. 지금은 북한 정책이 바뀌어 그곳에 직접 들어갈 수 없지만 그의 마음은 지금도 북한의 노인들에게 가 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자가 많으니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전종석 선교사님은 나중 된자로서 먼저 된자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