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2)~~임현수목사님저서
임현수 목사님의 글은 지금까지 듣고 본 어느 책보다 북한을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18 년에 걸쳐서 150 번 북한을 방문했다는 기록을 보면서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디모데를 전남 지역 교도소를 면회간 것이 8 년 동안 96 번 요한이는 5 년 반 동안 66 번 면회를 갔는데 캐나다에서 북한까지 비행기를 타고 북한의 여러 곳을 참으로 자세히 기록해 주셨습니다. 한데 목사님의 고백은 18 년 동안 방문해서 북한을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니었고 감옥에서 949 일을 살면서 북한의 참 모습을 배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선교회에서 계속 지원하는 선교지 중의 한 나라도 북한입니다. 북한을 담당하는 선교사님이 계속 북한을 방문하면서 그들을 섬기고 있기에 더욱 관심 깊게 기도하게 됩니다.
~~북한의 고아원
자주 다니던 해주, 황주, 사리원, 원산 함흥, 청진, 종성의 애육원, 육아원, 중등학원, 고등학원이 생각난다. 북한의 고아원은 가장 어린아이들을 모아놓은 애육원, 유채원에 해당되는 육아원, 초등학교 격인 중등학원과 중고등학교 격인 고등학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곳은 내가 여러 번 방문 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기던 지역이다. 여기 열거한 고아원의 원아들을 합치면 10,350명이었다. 내가 가장 많이, 가장 오래 다닌 곳이 사리원과 원산 고아원이었다.
사리원의 상원관리 소장은 착한 사람이었다. 자기 지역의 고아들을 살리려고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원장들은 계속 바뀌었으나 그는 바뀌지 않았기에 수년간 함께 일했다. 어느 봄날에 그가 사리원 근교에 있는 장방산에 우리 일행을 초청해서 나들이 간적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은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면서 조국의 정취를 느꼈다. 내가 원산 고아원을 10 년 이상 다니는 동안 중고등학원 원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1960 년부터 그곳에서 고아로 자랐다고 소개했다. 그녀 자신이 고아 출신이기에 고아들을 아주 잘 돌봐 주었다.
그녀는 평양에서 대학을 마친 뒤 다른 도시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결국은 자기가 자라난 모교로 돌아온 것이다. 언제나 자세가 바른 그녀는 몸은 쇠약해 보였으나 항상 변함없는 모습으로 우리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원산 고아원은 여러 단체가 도와주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건물 보수를 해주었고 벤큐바에서 온 어떤 단체는 그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사다 주었다. 우리는 꾸준이 양식을 내주었고, 어린 아이들의 옷과 기저귀, 비타민도 보내주었다. 원장들의 보고에 의하면 비타민이 아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10 년을 다녔으니 10 새였던 고아들은 어느새 20 세가 되어 군대에 입대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은 우리가 교회라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고, 캐나다에서 온 동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자기들이 배고프던 시절에 먹을 것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해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복음의 계절이 찾아오면 그들은 쉽게 하나님 앞에 나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피어날 민족 복음화의 꽃을 기대하면서 굳은 땅을 기경하는 마음으로 수많은 고아들에게 사랑을 부어주었다.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면 나는 계속해서 고아들을 보살피고 싶다. 며칠씩 그곳에 머물면서 그들에게 눈길을 주고, 손길을 주고, 사랑으로 아이들을 감싸면서 아버지같이, 할아버지같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