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와 요한의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
요즈음은 공장에서 시간이 날때마다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무척 많이 할애를 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무척 늘다 보니 참으로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고 혹시나 듣고서 제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무엇이든 나서서 도와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일입니다. 오해와 분쟁을 종식 시키는 일 을 하는데 개중에는 그나마 한 두명은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고 들어주려고 해서 보람될 때도 참으로 많이 있답니다
저 또한 디모데 형의 고백 “영혼들을 위하여 족을 만큼 기도하자”라는 고백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보고 점검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나름은 이 정도는 됬다고 생각을 했는데 다시 볼때면 제자리인 그들을 보면서 다시 점검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전도서 안의 솔로몬의 고백이 절로 저의 고백이 되어 복음 성가의 한 부분을 계속 노래하게 합니다. “♬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모하는 마음 금 보다도 귀하다.♬” 하루를 48 시간 처럼 그렇게 귀하게 여기시며 이 땅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안타까이 여기며 섬김의 삶을 기쁘게 순종하시는 엄마의 얼굴이 절로 그립습니다.
지난 주에는 곧 바바나 구매가 중단 될 거라 하여 바나나를 많이 구매하며 형제들께 나와드렸습니다. 그런데, 노랗게 잘 읽은 바나나를 기대했었는데 노란색보다는 녹색 빛이 더 선명한, 전혀 익지 않은 바나나가 지급 되어진 것입니다. 바나나를 받자 들고 먹던 형제들마다 바나나가 설익어서 풀 맛이 난다고 하여 나눔을 하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그러고 보면 일찍 캐서는 안 되는 일들 가운데 하나가 이른 수확이지 싶었습니다. 덜 익은 바나나처럼 아직 채 익지 않은 과일을 따서는 안되듯 이요. 그것을 먹으면 제 맛을 맛보지 못하는 것은 뒤로하고 배탈을 겪을 수 있어 몸에 유익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반대로 너무 늦은 일도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수원을 하는 이들은 때를 지나 피는 꽃을 반기지 않는다고 하거든요. 다음 해에 그 가지는 열매를 맺지 않기 때문이라 하거든요. 엄마께 마음을 담으면서 절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오늘 내 삶의 열매는? 너무 늦게 꽃 피워 쓸만한 열매가 없는 것은 아닌가?
성경 속의 포도나무 과수원의 무화과 나무가 생각납니다. 포도나무 가운데 무화과 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싶었고 또 사방에 온통 포도나무라고 해서 무화과 나무가 자신을 오해 한걸까? 포도원에 자신을 심었다고 주인을 원망한 걸까? ^-^ 아니겠지요. 나무 본인의 본질은 그 나무대로 열매를 맺는 것이기에 어디에 심기었든 그 나무대로의 열매를 맺었겠지요.
엄마도 아시다시피 주인은 열매 맺기를 기다렸는데 무화과 나무는 3 년 동안이나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열매를 맺을 때가 지났을 텐데도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주인은 나무를 베어버리라고 했고 그때 지혜로운 청지기가 주인을 만류했죠. 한번만 더 기회를 주자고, 그 동안에 거름도 주고 잘 가꾸겠다고. 자신이 잘 관리를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며 만류하여 그렇게 1 년의 기회를 얻었지요.
사랑하는 엄마, 저는 지금 무화과를 심고 세 해가 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버림 받기에 충분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1 년의 기회를 더 얻었으니 아직 기회는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시간은 흐르는 것. 제가 어떤 것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는데 흐르는 시간을 두고 “내가 기다렸다”고 할할 수는 없는 것이니만큼 그저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열매를 맺도록 고랑을 파고 거름을 주고 땀 흘려 가꾸어 내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삶, 그것이 참된 기다림이고 열매 맺는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오늘도 귀하게 깨닫습니다. 올 한해도 감사와 기쁨의 열매를 맺는 아들이 되도록 위하여 힘껏 응원해 주세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