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 안에서도 일주일에 하루 금식기도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그동안은 금식을 한다며 그 날을 지킬 때도 있었고, 하루를 꼬박 채우지 못하고 한끼 정도는 하면서 금식 날을 잘 챙기지 못했던 게 사실인데 지금부터라도 매주 하루는 금식기도를 하면서 어머니 금식기도를 이어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사실 어머니께서 목요일 금식기도를 하고 계시는줄 알고 있어, 저도 그날만큼은 기쁘게 참여해보려고 노력은 해 왔는데 교도소안에서 공장 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다 보니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 친목을 위해 꼭 무엇을 하니 입에 넣지 않고는 안될 것 같아 금식기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핑계가 될 수 있지만 그들과의 관계도 중요한 만큼 앞으로는 제 금식 기도날은 토요일로 정해서 그날 만큼은 지금의 어머니의 금식기도를 이어 받아 기쁘게 금식기도를 이어 가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금식기도의 방법을 잘 숙지해서 (이사야 58 장 3~11) 헛됨이 되지 않도록 기쁘게 할 것이며 나를 위함이 아니요 많은 이들을 위해 중보 기도 할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날이 될 수 있도록 감사하며 열심을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어머니가 이곳에 한 달에 한번 오셔서 유리창 사이로 면화하는 시간은 비록 짧아도 저는 그 어떤 시간보다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 이었으며 기쁨이 넘쳤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날마다 주님 안에서 기적을 경험 한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참으로 감사한 일인지 아마 그 누구도 이런 경험 없이는 기쁨을 논하기는 힘이 들거라 여깁니다.
그날 함께 해 주셨던 우리 이모님과 운전을 해 주시는 최병민잡사님께는 제가 감시 감사라는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의 넘치는 감사를 해 주신 분들이고 인도 학생 긴과 카메룬 학생 레이첼 에게도 너무나 감사 드리며 그날 밖에서 마음을 함께 해 주셨던 김진영교수님께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가득 채워진 사랑의 탱크를 채우는 것에 끝내지 않고 사랑이 필요로 하는 곳에 언제든 거져 줄수 있는 기쁨의 시간 만이 남았네요.
어머니께서 그리 하셨던 것처럼 아들도 기꺼이 거저 받았으니 거져주는 일에 열심을 내겠습니다.
오늘도 김밥을 말아서 나누었습니다. 다른 때와는 다른 색다른 맛을 내려고 멸치와 무말랭이 무침과 소시지와 떡 갈비를 구매하며 김밥 속을 만들었고 멸치는 고추장과 매실차 스틱을 넣어 맵고 단맛을 보충하려고 버무린 후에 준비해둔 다른 재료들을 함께 넣어 멸치가 주 재료가 된 멸치 김밥을 만들어서 형제들과 나누었습니다. 트집쟁이 어르신을 빠뜨리지 않고 더 많이 챙겨 드렸습니다. 양이 마음에 드셨는지 아님, 맛이 있어서였는지 별 트집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트집쟁이 어르신을 볼 때면 예전의 저와 오늘날 예수 안에서 살게 된 저를 비교하게 되며 트집쟁이 어르신도 어느 한 순간에 성령의 참 위로가 함께 하심으로 주를 앙모하며 사랑하는 자로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가끔씩 예수님을 논하고 예수쟁이들의 이중성을 설명하며 욕하는 것을 보면 이미 하늘 아버지의 사랑은 많이 알고 계신 분이니까 예수 믿던 자들에게 받은 상처를 위로 받고 회개하면 예수 사랑을 조목 조목 증거하는 사랑쟁이가 될 줄을 믿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 가운데는 두 가지 성품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는 나와 세상 유혹에 따라 살아가는 나! 똑같이 예수님께 배웠지만 베드로는 하루에 3 천명씩 회개시켜 새 사람을 만드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고, 가롯 유다는 결국 주님을 팔고 자살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면은 사람의 두 가지 성품을 더욱 잘 알게 됩니다. “자신의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워 자신의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자신을 사로 잡는 것을 본다” 라고 말씀한 사도 바울의 고백은 곶 지금을 살아가는 저의 고백임으로, 순간 순간 일어나는 육신의 정욕에 속아 낙심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며 살아야 함도 깨닫습니다.
어느 인디언 노인은 내면의 싸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 안에는 개 두 마리가 있고. 한 마리는 고약하고 못된 놈이고 다른 한 마리는 착한 놈이요. 못된 놈은 착한 놈에게 늘 싸움을 걸지요” 듣고 있던 사람이 어떤 개가 이기느냐고 묻자 노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습니다. “내가 먹이를 더 많이 준 놈이요.”
사랑하는 엄마, 결국 제가 성령과 육체의 마음 사이의 싸움에서 제가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는 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디모데야, 너는 과연 성령의 열매를 잘 먹고 성령의 사람으로 강건하게 살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