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학생들과 방문한 보나콤 이야기 (2)”
아프가니스탄이나 인도 등 비가 오지 않는 열사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물은 윗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랫물도 있거든요. 지하수 아래의 대수층에 있는 강력한 물샘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렇게 가난한 나라에서 어떻게 물을 끌어올릴 수 있겠어요? 하지만 돈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우리는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하는데, 반만 그렇습니다. 나머지 반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비로 온 물들이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가죠. 나무를 보더라도 땅 속 깊숙한 곳에 뿌리를 박고 그 물을 빨아들인 다음 그 물을 공기층으로 확산시킵니다. 땅도 마찬가집니다. 땅 속에 아무런 펌핑시스템이 없어도 땅을 뭔가로 덮어주기만 하면, 그 땅은 정확하게 70%의 습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덮어주면 대지는 본능적으로 아래에 있는 물을 위로 끌어올리게 되어 있으니까요.
예순이 넘으신 재미교포 중 한 분이 9.11 테러 사건 이후에 모든 것을 교회에 기부하고 맨몸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셨어요. 네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요. 그 분과 매주 한, 두번씩 이메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덮어야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원칙은 현지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덮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 중 제일 좋은 것은 나뭇가지들, 나뭇잎들, 풀 등 식물성입니다. 땅은 자기로부터 온 것을 제일 선호하겠지요?
과거 10년 동안의 민주당 정부에는 희년정신을 갖고 있던 사람들, 토지의 공적 개념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경제관료로 많이 참여했습니다. 그들이 그 10년 동안에 법과 제도를 많이 바꾸어놓았어요. ‘토지은행’이란 개념이 있는데, 이것은 농사를 짓지 않는 부재지주의 땅을 농업기반공사가 구입하거나 관리하면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에게 대여를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아무런 기반이 없는 노숙자들도 기댈 언덕이 생기게 되었어요. 감사한 일이죠. 거주할 수 있는 곳만 있으면 농사가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희 공동체가 현재 쓰고 있는 땅도 도지를 내고 모두 빌려 쓰는 것입니다. 땅을 빌리면 저는 땅과의 소통을 시도합니다. ‘내가 너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너를 약탈하고 착취한 것에 대해 정말 미안하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내가 너를 잘 돌보아주마’라고 말하고 땅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농사짓기 시작하면서 무엇이 땅을 제일 괴롭힐까, 땅이 무엇을 제일 싫어할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도 해야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땅은 직사광선을 제일 싫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짝바짝 마르니까요. 저는 어디를 가든지 그 흙을 입에 넣고 맛을 봅니다. 만져보고 비벼보고 냄새도 맡아봅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서 착취를 당하고 약탈을 당한 흙들은 굉장히 쓰고 텁텁하고 냄새가 나죠. 그런데 덮어주고 어루만져주고 매만져주고 사랑을 속삭이면 3-4년 후에는 흙이 달라집니다. 과학적으로 비교해봐도 차이가 분명합니다. 착취를 당한 흙들은 홑알구조라고 하여 흙들이 뭉치지 않고 뿔뿔이 흩어지고,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하여 땅이 끈기를 잃어버리고 다 끊어져버립니다. 0.002mm 이하의 아주 작은 흙알갱이들이 다져지고 기체층이 사라지면서 딱딱해져요. 그리고 바람이 불면 먼지가 되어 날아가버리죠. 그런데 땅을 덮어주면 흙알갱이들이 떼알구조라고 하여 자기들끼리 뭉치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에 공극이 만들어지고,
공극을 통해 바람과 물이 들어가고 지렁이, 두더쥐, 뱀 등 지하 생명체들이 살기 시작합니다. 그 안에 공극이 뻥뻥 뚫립니다. 이렇게 한 4년 지나고 나면, 아무리 돌이 많은 밭이라도 돌멩이가 사라집니다. 돌멩이는 밑으로 가라앉고 흙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죠. 골라내지 않아도. 이 때 흙을 입에 넣고 맛을 보면 구수한 맛이 납니다. 그런 대지 위에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흙들이 내 발을 간질이면서 진짜 고맙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땅을 일구어놓으면 주인이 그 땅을 바로 반환해간다는 것이 제일 가슴아픈 현실입니다. 그러면 더 어려운 박토를 빌려서 다시 농사를 짓습니다. 땅이 없이 농사짓는 것이 참 어렵고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중국 원남성이나 사천성 등에서 땅없는 소작민들로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의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같이 가난해지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직접 사람이 되셨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