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동의 새로운 부부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
부모가 농아이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어려움을 술로 잊어버리고만 싶었다고 고백을 하는 결혼을 앞둔 새 신랑 그리고 그 신랑을 격려하며 새롭게 가정을 꾸려나갈 신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봅니다.
오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외국인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한국 전쟁을 치르고 그로 인해 몇 년 후 살던 집이 불타고 그 여파로 13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4 살에 축구를 하다가 도중 실명을 하고 그런 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뇌일혈로 돌아가시고 4 명의 자녀들만 남았는데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동생들을 돌보던 누나는 과로로 세상을 떠나고…. 과연 이런 중학생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신도 앞가림하기 힘든데 여동생은 고아원으로 남동생은 철물점에서 일하고 몇번 죽어버리고 싶어서 자실 시도를 했던 그 중학생의 미래는?” 한국인에게도 질문을 하니 별로 미래가 없어 보인다는 대답을 했습니다.
장애인 재활원을 전전 긍긍하던 그 중학생에게 어느 목사님이 “갖지 못한 한가지로 인하여 괴로워 하기 보다는 가진 것 열 가지를 감사하자!”라고 가르쳐 주셔서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눈을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는데 하나님은 그의 눈이 되어주고 지팡이가 되어준 예수님 닮은 한 여대생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여대생은 처음 장애인 봉사를 하다가 무남독녀 외딸이었던 환경에서 너무나 불쌍한 그 도중 실명자를 격려해주고 새 희망을 부어 넣어주면서 후에 결혼을 하였습니다. 역경과 고난을 이길 힘을 예수님을 통해서 불어넣어주어서 연세대를 졸업하고 1972년 미국 유학 길에 올라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미국 유학을 떠날 당시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는 장애를 해외 유학의 결격사유로 규정했지만 이 특별한 고난을 이긴 학생이 국비 장학생으로 유학으로 가면서 이 조항이 폐지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장애인 최초의 정규 유학생이 되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 후 일리노이대 교수와 일리노이주 특수교육국장 등을 역임하다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로 발탁됐습니다. 바로 유명한 강영우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강 박사님의 백악관 차관보 발탁은 한국인의 미국 이민 100년 역사상 최고위 공직이었습니다.
강영우박사님은 여러 가지 악재가 전혀 미래가 보이지 않았지만 예수님 닮은 아내를 주시고 남편은 아내에게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당신을 처음 만난 게 벌써 50년 전입니다.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나서던 당돌한 여대생,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습니다”
그 아내는 남편과 두 아들도 잘 키워서 강 박사님의 장남 진석씨는 워싱턴포스트가 뽑은 '슈퍼 닥터'로 선정되기도 한 유명 안과전문의이고 차남 진영(씨는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해 보기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긴 채로 자라준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왔다는 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아내 석은옥여사님은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지팡이가 되어 헌신적인 아내로,
두 아들을 잘 키워 훌륭한 며느리들까지 본 어머니로 살아온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이처럼 선명한 비전으로 내 인생을 인도해 신앙 안에서 명문가를 만드는 동반자가 되어준 남편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제 곧 결혼할 신랑 신부도 이런 고백을 하기를 소망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도 이렇게 행복한 부부의 고백을 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