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자사모님의 우울증 치유이야기”
“주라 그리하면 채우리라” 책에서 양영자사모님의 우울증 그리고 치유의 비결, 그 이후의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들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퍼온 글입니다.
~~어머니가 급작스럽게 내 곁을 떠나신후, 내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무색이었다. 일상의 풍경들이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였다. 나는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어머니를 낫게 해주실것라는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외면 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내 마음은 한없이 낙심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심한 감정의 기복이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렸다. 심각한 조울중이었는데 종종 환청이 들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하루 하루 더 깊은 늪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국가대표 시절, 나는 내 신앙이 꽤 깊다고 생각했었다. 하나님이 늘 내 곁에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언제든지 내가 찾고 구할 때 선하게 응답해주실 것으로 믿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탁구 전도자”라 부르기도 했다. 나 자신도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이다” 라는 순교의 각오로 말씀을 전할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피폐해진 내 영혼은 하나님을 찾는 듯 헤맸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 곳에도 계시지 않는 것 같았다. 울부짖음조차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뿐 하나님의 대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믿음을 잃고 휘청거리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끌려다니다 보니 심지어는 이상한 환청까지 들렸다. 그뿐 아니었다. 헛것이 보이기도 했다. 환청을 따라 나도 모르는 행동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이 소리는 반복적이고 집요했다.
그 소리는 간절한 기도에도 나를 떠나가지 않았다. 그 좋아하던 찬양도 내 앞에서 나오질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은둔자처럼 스스로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 같은 방안에 갇혀서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들었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않은, 살지만 살지 못하는 절망의 바닥으로 끝없이 추락해갔다.
결국 나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로 이끌려 갔다. 나를 아끼던 권사님들이 보다 못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미친 사람은 스스로 미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사님들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려 할 때도 발끈해서 “내가 왜 정신과를 가는데? 내가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며 모든 것을 부정하려 했다. 마지못해 병원에 다니면서도 나는 며칠만 진료를 받으면 곧 나아질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우울증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기대만큼 빨리 낫지 않았다. 나
는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해서 통합 치료를 받았는데 상당 기간이 길어졌다. 그때 난 큰 오빠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어린 조카가 새언니에게 이렇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고모는 왜 저렇게 짐승처럼 살아? 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 왜 나오지도 않고 꼼짝도 안해?”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정말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몰골과 행동을 보면 조카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울증 증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를 괴롭히기도 했다.
계속 우울한 기분이 들 뿐 아니라 무척 예민하게 굴었다. 일상 생활에서는 흥미나 즐거움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살이 많이 쪘고, 나도 모르게 좋아하는 음식을 폭식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자꾸 피곤했고 의욕이 바닥이라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가치한 느낌이 들었고, 죄책감 또한 많이 들었다. 그리고 사고력이나 집중력, 심지어 판단력도 떨어졌다. 물론 자신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은 자살 충동도 느꼈다. 그렇다고 자살을 할 수는 없었다. 혼란스럽고 멍한 의식 속에서도 나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자살하면 안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우울증 약을 먹고 죽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 병에 걸렸다는 자각과 인정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우울증 약을 먹으면 서서히 죽게 될 것 같았다.
세분의 권사님들은 우울증 치료에는 “사랑밖에 없다” 일치된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을 해주었고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 모든 것을 참고 세워준 남편과의 만남은 선교사로서 치유이후에 새로운 피조물의 새로운 삶을 보여주었다. 한 권사님은 배우자를 소개해 주었고 선교사로 헌신한 남편을 양영쟈 사모님은 이렇게 남편을 표현했다. “그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나는 큰 위안을 얻었고 다시 일어설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나의 모난 성격과 부족함을 채워 줄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의 남편 이영철 선교사 한 사람밖에 없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지나온 모든 힘든 과정을 생각하면 할수록 남편은 내게 둘도 없이 감사한 사람이다. 그는 마치 자기가 없는 사람처럼 간도 쓸개도 다 빼놓은 사람처럼 나를 위해 그렇게 희생했다. 모든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려야 모든 것이 풀린다는 것을 그는 삶으로 직접 보여주었다.
사랑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식어가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 가는것이다. 이토록 충마한 기쁨과 감동을 줄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 나의 남편 이영철 선교사, 그는 또 하나의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