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나니 천국으로 변했습니다.”
바나바 훈련원을 세운 이강천 목사님의 또 다른 간증은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예수님을 거부하다가 예수님을 믿고는 부모님을 위하여 8 년의 중보기도를 하고 온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여전히 가난했습니다.
아주 작은 방에 네명이 판자 지붕밑에 방을 세를 얻어서 살때의 이야기입니다.
~~작은방에 모여살던 어느 날 동생과 동생을 만나러 온 친구도 함께 있었다. 점심 때가 되어 우리는 낡은 사각 밥상에 찬밥을 차려놓고 앉아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점심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이다. 그러자 지붕에서는 자동적으로 타악기 연주가 시작되었다. 타다닥타다닥 빛방울이 판자지붕에 부딪치며 내는 소리를 그대로 타악기 연주가 된다. 거기 까지는 그래도 감상할 만하였다. 조금 지나자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지 시작하더니 조금 후에는 빗줄기로 쏟아지더니 물줄기가 갈수록 굵어진다. 루핑 어딘가가 찢어져서 새는것이다.
밥상을 옆으로 치우고 세숫대야와 양둥이로 번갈아 물을 받아내시 시작했다. 갑자기 어수선해지고 매우 불편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중에 두 사람이 안절부절못했다. 하나는 부짓집 친구를 맞이한 동생이 그렇고 손님으로 온 그 친구도 민망해 하며 안절부절이었다. 이때 어머님이 미소를 지으시며 시처럼 아름다운 글을 읽으셨다.
“허허, 감사도 하지. 않은 자리에서 공짜로 폭포수 감상하네 그려.” 순간 우리는 같이 웃었다.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옷고 편안한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비는 소나기였고 지나갔다. 물기를 닦아내고 우리는 먹던 점심을 마저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동생의 친구하고 동생이 함께 어디 좀 가겠다고 나섰다. 내가 따라 나가며 동생의 친구에게 악수를 하면서 “누추한 집이지만 자주 놀러오게” 인사를 건넸다.
“형님, 그런 말씀 마십시요. 저는 오늘 형님 댁에 와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에이 이 사람 뭐 앉은 자리에서 폭포수 좀 감상했기로 무슨 몰라운 일인가?”
“아닙니다. 비록 비가 새는 판잣집이지만 형님데 집은 천국입니다. 나는 오늘 형님 댁에 와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어허 너무 그리지 말게 부끄럽구먼.”
“아닙니다! 형님. 진짜 형님 댁은 천국입니다. 형님이 받아 주신다면 저도 이 집에 살고 싶습니다. 형님이 아시다시피 우리 집은 부자입니다. 없는 것 없이 갖추어 놓은 대궐 같은 집에서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저의 집은 지옥같습니다. 저 솔직히 우리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형님에 와서 살면 안될까요? 이런 천국에 살아보고 싶어요.”
“이 사람 놀담 그만하게”
“아닙니다. 농담아닙니다. 진담입니다.”
“그래도 우리 집에 살 순 없어. 방이 너무 작아서 자네까지 들어올 공간이
없다네. 이 사람아 자네말이 진정이라면
우리 이렇게 함세.
“어떻게요?”
“그 궁궐 같은 집을 천국으로 만드는거야. 자네부터 예수 믿고 부모님 예수 믿을때까지 기도하자구.”
:아이구 어느 세월에 그렇게 되겠습니까?”
“이 사람아 나는 8 년 걸렸네. 자네도 이 정도 기도하면 천국을 볼 수 있을 걸세. 꼭 판잣집 천국이어야 할것이 무언가? 궁궐 천국 만들자구.”
지난 날 부모님이 예수님을 모르실 때는 부모님 사이의 대화도 참 거칠고 삭막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주님을 모시고 나서 두분 모두 사랑의 진정성도 알게 되었다. 가정에는 진정한 평화가 오고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님을 모르던 시절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현실을 잊으셨다기 보다는 그저 가벼운 불평으로 반찬 투정을 한적이 있다. “우리 집 밥상은 참으로 초지일관 늘 푸른 초원이야.” 이 말에 되돌아 오는 말은 너무 삭막했었다. “돈 벌어와 봐. 누구는 반찬 만들 줄 몰라서 못 만드는 줄 알아?” 이것은 분명 사랑의 원리가 아닌 돈의 원리가 가정을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주님의 사랑으로 새로워진 부모님의 대화는 달라졌다. 어머님께서도 시인이 되셨다. 우리가 함께 예수 믿으며 모여 살며 천국을 경험할 때 그렇다고 당장 부자가 된 것이 아니고 판잣집에, 비가 새는 집에 살며 고깃국 한번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 현실은 변한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비가 새는 집에서 폭포수 감상한다고 미소 지으며 사는 여유가 있었다. 한번은 아버님이 예의 반찬투정을 또 하셨다. “진짜 초지일관 우리 집 밥상은 늘 푸룬 초원이구나.” 그러나 어머님의 응답은 그때와 달라졌다. 시로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허허 초원이 푸르르다 보면 송아지 망아지가 뛰어 놀겠지.” 이렇게 사는 것이 천국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