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암 케리~기독교 선교운동을 일으킨 주인공”
선교사가 되고 싶다면, 하나님을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세권의 책을 강주합니다. “조지뮬러”, “허드슨 테일러”, “윌리암 케리” 이런 역사를 바꾼 선교사들의 책을 그냥 대충 읽지 말고 가르침을 배워야 선교를 기쁘게 감당할 수가 있을것입니다.
윌리암 케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는 말은 그의 삶의 주제이자 생활의 지표였고 그의 경험을 그대로 나타낸 말입니다. 그는 교회를 다녔지만 전적으로 형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가 삶의 주인이 되고 인격적인 만남이 되었을때 어떤 상황에도 불안하거나 우울해지지 않고 주님만을 섬기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관심하고 형식적인 종교는 늘 시대를 이어가지만 진정한 회개운동과 영적부흥은 전혀 다른 것을 한 사람의 변화를 보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윌리암 캐리의 선교사로서의 고백중에 하나가 “만약 선교 후원자를 모집하고 떠난다면 선교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기억속에 당신은 사라질것입니다.” 정말 이 선교의 현장에서 30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충고가 정말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조지뮬러나 허드슨 테일언, 윌리암 캐리의 공통적인 가르침은 절대 사람을 의지 하지 않는것입니다. “시146:3-4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이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o윌리암 캐리의 생애의 요약부분.
루터가 개신교 종교개혁을 일으켰다면, 케리는 기독교 선교운동을 일으킨 인물이다. 케리 이전에도 여러 선교사들이 있었지만 윌리암 케리(1761-1834)를 “근대 선교의 아버지” 캐리를 근대선교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영어권에서이다. 그러나 캐리가 영어권 선교의 선구자이고, 캐리 이후 영어권에서 개신교 선교사의 4/5를 파송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선교사에 있어서 윌리암 케리가 갖는 위치는 누구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상명령이 사도들에게만 주어진 명령이므로 이방인을 개종하는 일은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시대에 케리는 세계 복음화에 대한 강한 도전을 주었으며, 종교개혁자들은
마태복음28:16-20의 선교의 대사명을 사도들에게만 국한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하고 선교의 의무는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사명임을 역설하였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를 위한 세계선교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특별히 케리의 생애와 선교사역을 연구하고 새롭게 조명하는 것은 선교사 케리의 생애를 통해 이상적인 선교사의 모습을 점검하고 교훈 받으며
오늘 선교적 방향을 바르게 점검코자 함에 있다.
Ⅰ . 생애
1. 어린 시절
1761년 8월 17일 노스햄톤의 폴러스푸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케리는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에드몬드 케리는 교육을 받은 지적인 사람으로 직조업에 종사했다. 윌리암 케리 케리가 글을 깨우쳤을 때 책을 좋아했던 케리는 구할 수 있는 책은 부지런히 읽어 가는 책벌레였다. 그는 공부에 대한 욕구뿐만 아니라 바깥 소식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열한살 때 신문에서 노예제도에 관한 기사를
읽고 노예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것은 평생 그의 관심사가 되었다.
케리는 어릴적부터 고집이 세기로 소문이 나있었으며 이 고집은 그의 생애를 가름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후 케리는 정원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과학과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피부가 워낙 약해 뜨거운 햇볕에 노출되면 이내 염증이 생겨 직업을 바꾸어야 했다. 그래서 케리의 아버지는 그를 피팅톤에 사는 구두 수선공 크라크 니콜스의 견습공으로 보냈다. 거기에서 그는 당시의 필수품인 신발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2. 회심
그는 십대에 회심을 하였는데 당시 비 국교인 침례교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하였다 케리의 회심에 도움과 영향을 미친 사람은 함께 일하던
동료 와르였다. 케리는 가끔 와르와 함께 신앙에 대한 심한 논쟁을 하곤 하였다. 케리는 와르와의 토론을 통해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필요했던 것이다. 1779년 2월 10일 국가 기도일에 케리는 와르의 권유로 샤클톤에서 열리는 기도회에 함께 참석했다. 기도 모임이 계속되는 동안 케리는 자신의 전 생애를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수 주일동안 진지하게 생각한 끝에 케리는 그리스도께서 먼저 자신에게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안을 얻었다.
~~그는 인도에 선교사로 가서 인도언어를 처음 배웠고 7 년만에 성경을 번역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할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수 많은 어려움이 그의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던것을 보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선교사님의 특징을 다시 묵상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제 우리 조국을 살리기 위해서 침묵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할수 있기를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