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능력은 지금도 동일하십시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행복동행전을 써가는 홀리네이션스에서는 나사로같이 죽지는 않았지만 죽기 직전까지 갔던 세명이 살아나는 것을 우리 모두 같이 보았습니다. 그러기에 거짓을 말하거나 과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첫번째 인물은 인도네시아 데니 이야기 인데 데니는 외국인 숙소 이층 콘테이너를 올라가다가 뒤로 넘어져서 머리뼈가 많이 부러져서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머리 전체를 붕대로 감고 전혀 움직임이 없는 시체를 보는 것 같던 그 중환자실의 분위기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의료진들은 곧 사망할것이라고 전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나는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도 모르는채 가는 것이 싫어서 우리 같이 합심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보름후에 손가락 약간 움직일정도인 것 보고도 소망을 가졌으며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셨고 그 부모님은 두달후에 와서 무슬림 나라에서 자신의 아들이 사경을 해맬 때 크리스천이 자기 아들을 병원으로 옮기고 살아난 것을 보고 스스로 교회에 가서 예수 믿기 시작했습니다. 데니의 어머니가 우리 예배에 같이 참석을 해서 찬송가를 연주하는 것을 들었던 그 모습과 이 가족을 공항으로 데니가 걸어서 건강하게 같이 자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했던 추억은 기쁜 추억중에 하나입니다.
두번째는 우리 같이 기도회에서 기도하던 김금옥집사님이 살아난 감격입니다. 집사님은 지금으로부터 5 년전에 택배차가 앉아있던 좌석을 받아서 남편이 운전하던 차에 타고 있다가 갈비뼈 12 대 턱뼈 부러지고 중환자실에서 우리가 갔을 때 명지병원 의료진이 소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던 그 모습과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로 통골하던 남편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갈비뼈가 너무 많이 부러져서 수술을 시도 할 수가 없다고 하였고 집사님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명의사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의 질병을 가져가셨고 연약함을 가져 가셔서 갈비뼈도 턱뼈도 수술하지 않고 지금 5 년째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엄마 없이 결혼식을 할뻔한 따님 결혼식에도 우리 같이 가서 기쁨을 나눌수가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자살 시도해서 육교에서 뛰어내린 홍준이의 모습을 병원에서 보았을 때 설사 의식이 깨어나도 의료진의 소견대로 식물인간이나 장애를 가지고 살것이라고 하였는데 인간의 눈으로 볼때도 의료진이 아니래도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육교에서 띠어내렸기에 머리에 혹은 얼굴 반만한 혹에다가 말이 어눌해서 알아듣기도 힘들었습니다. 정말 불가능한 모습에서 하나님은 정상으로 만드신것뿐 아니라 “보라 새것이 되었도라!!” 감탄하며 바라보는 미남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정말 선전에 나오는 Before 그리고 After 를 보여주는 사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홍준이의 새로운 피조물은 외모보다 속사람 새모습이 더욱 놀라게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일주일에도 여러 번 언제든지 홍준이가 알고 싶고 궁금한 것이 성경이나 인생의 질문이 있으면 전화를 홍준이가 걸어오면 같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우울증 약도 가족들은 끊는 것을 걱정했지만 과감하게 끊었고 오히려 그 약을 복용할때모다 밝고 건강해졌습니다. 새벽이면 같은 청년들에게 보내줄 글을 저에게 재촉을 해서 새벽 6 시면 새벽기도 다녀온 홍준이에게 펴줍니다.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식사도 하고 교제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울증에 걸린 청년들의 많은 경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고 같이 시간을 나누기만 해도 그들은 마음이 풀어지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진정 만나서 삶속에서 동행할 때 새로운 삶을 사는것을 보면 정말 감탄 그 자체입니다. 아래 내용은 준이의 고백입니다.
새로운 피조물 홍준이의 간증(2)
사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술을 되게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술을 자주 마셨으며, 한번 먹을 때마다 소주3병은 기본으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이트 클럽도 많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클럽도 자주 다녔습니다. 제가 클럽과 술을 자주 가고 마셨던 것은 그때만큼은 행복했거든요. 그리고 저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주 마셨고 누구보다 자주 클럽에 갔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정신을 차린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준아, 술은 그 순간만 행복하게 해주고 그 순간만 아픔을 잊어 근데 너 그 순간만 행복할래? 그리고 그순간 그 짧은 순간 이후로 더 불행해지고 더 힘들었잖아. 다음날 아침부터 제대로 일상생활 못하고 패턴이 망가지고 일어나서 보니 돈도 흥정 망정 쓰고 건강도 안 좋아 지금은 젊기에 모르겠지만 이미 체험해 보아서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 또 항상 술이 없으니 항상 술을 못 마시니 술이 없을 때마다 힘들고 술이 없어지니깐 의지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잖아. 그래서 더 자주 찾았었잖아, 근데 사실 홍준아 너는 알고 있었어, 술이 항상 널 위로해줄 수 없고 사실 술은 널 위로해준다고만 착각하게 해 주는 것이라는 것. 사실상 위로도 안 되는,. 그런데 지금은 순간만 행복한 게 아니라 일상이 대부분 행복하잖아”
주님과 동행해서 말이야. 주님과 동행 한다는 건 아마 술과 돈에 의지하면서 주일에만 그리고 정말 가끔 자기가 힘들 때만 기도로 찾는 게 아니라 평소에 술과 돈 그 외 세상 것들이 아닌 기도와 말씀 찬양으로 무장하고 주님을 의지 하는 것이었더라 구요. 다들 한번쯤 들어본 말일 거에요. 저는 선데이 크리스천이였습니다. 주말에만 일요에만 아니 그 교회에서 있는 그 시간만 크리스천이였던 척 한 것 같습니다. 그 예배시간 끝나면 다시 세상적인 것들과 친구를 맺었죠. 주님은 나 몰라라 하고 안중에도 없었죠. 그리고 안 해놓고 못한 거라고 안 해놓고 변명을 찾고 그것이 적당한 변명거리면 그걸 정당화시켜 합리화했던 거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과거의 저처럼 그러시지는 않으신지요?...주님 저 이래서 못했어요 봐줄 거죠? 저 힘들었어요 저 사랑하니깐 봐주세요 라고 적당하게 둘러대며 기도했습니다. 과거에 말이죠. 근데 사실 그건 과거에 제가 못한 게 아니라 안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어렸을 때 주일 말고 평일에도 교회에 자주 갔 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맞벌이 하시고 항상 심심하면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갔다고 합니다. 교회는 자주 갔지만 기도는 싫었습니다. 지루했거든요 하지만 올해 병원에 입원하여 살아가는 인생길이 어두 깜깜 하였을 때 기도가 제 빛이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위해서 기도 해주었을 때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저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도 가운데 저를 만나주신 주님은 “ 홍준아 괜찮아.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 단다. 사실 나는 네가 힘든 순간마다 네 옆에 있었단다, 네가 나를 외면했을 뿐이야. 너와 항상 동행하길 원한단다. 나와 동행할래?” 라고 하셨고 저는 주님과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그 누구든지 간에 정말 그 누구든지 간에 스스로 쓸모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그 스스로 쓸모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정말 모두 다 동행 하시길 원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