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의 전도”
홀리네이션스에서는 각나라의 지부를 방문할 때 항상 각자 비행기표와 경비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12 명인원중에서 서신암선생님은 초등학생 아들 두명을 데리고 갔기에 세명의 경비를 내고 출발을 했습니다. 떠날때 저녁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낮에 출근을 하고 돌아오는 날도 공항에 차를 세워놓고 바로 직장으로 박윤태장로님은 출근을 하는 스케쥴을 기쁨의 강행군을 했습니다. 캄보디아 교회가 건축이 이제 거의 마무리되고 곧 예배를 드릴수 있게 되어서 우리는 12 명이 모두 거리 전도를 나갔습니다. 처음출발부터 12 명의 인원이라 우리는 각자 자기 물건은 비행기 안에 들어갈 정도만 챙겨놓고 전도용으로 사용할 물건을 박스에 일인당 한박스씩을 부쳐서 가지고 가는데 이 물건도 여호와 이래 하나님께서 아주 좋은 물건들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교회 건축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셨고 하이소밧도 그곳의 선교사로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도착해서 아주 잠시 수면을 취하고 예배를 드리고 거리 전도를 나섰습니다. 그날 저녁에 입당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소개 하기 위해서 진흙에 빠지기 쉬운 도로를 걸어다니면서 초청을 했습니다. “독립수어”라고 두손을 모으고 하는 인사를 해가면서 하이소밧하고 고아원에서 살던 “뚜이” 라는 이름을 가진 한 자매를 한집에서 살기 시작하였는데 둘이 나누워서 통역을 시키면서 그날 저녁에 교회에 오라고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하는데 하이소밧은 120 명을 예상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녁 6 시부터 시작한다고 전하고 교회로 돌아왔는데 5 시 반이 되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더러는 아빠도 함께 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140 명이 순식간에 모여서 예배당이 꽉 찼습니다. 초등학교 5 학년 그리고 동생 3 학년인 희수 희원이도 전도를 어찌나 잘 하던지 길 한옆에는 여기 저기 쓰래기가 쌓여 있는데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전도하는 모습에 엄마 서신암선생님이 놀라워했습니다. 희수 희원이에게 체험 학습을 하기 위해서 결단을 하고 같이 온 선교여행이었는데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삽시간에 3 층 예배실로 층계를 이어서 올라가는 대부대를 보고 희수 희원이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전도하고 이렇게 많이 온 것을 본적이 없지?” 물으니까 그렇다고 하는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 전도하자고 하니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입당예배를 기쁘게 드리고 난후 우리 12 명은 캄보디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빵과 그들이 찍어먹는 스프를 큰 냄비로 하나가뜩 끓어서 모두 나르느라고 손과 발을 빨리 빨리 열심히 사용해야 했습니다. 교회 이름을 “여호와 이래” 를 생각하며 “프놈펜 이래 교회”라고 김영덕목사님이 지어주셨습니다. 도시 한복판은 포장된 도로에 많이 발전한 것 같은데 그 도로를 잠시 벗어났을 때 비가오면 금방 잠겨버리는 주택을 보면서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기에 정말 사랑의 나눔이 필요한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더 가난한 지역으로 우리는 옮겨서 전도를 다음날도 계속 하였는데 40 대 중반에 시각장애인인 남편과 2살 3 살된 두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아내의 모습은 보기에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독거노인인 엄마에게 손자를 맡기고 거의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진정한 사랑의 돌봄이 필요한 수 많은 영혼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현지인을 키워서 자국으로 파송하는 홀리네이션스 선교회의 기본 방침은 참으로 선교에 너무나 좋은 원칙인 것을 여러나라를 방문하면서 항상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 자국민은 그 나라의 풍습을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세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언어의 한계도 뛰어넘습니다. 우리 나라 말을 외국인이 아주 잘한다고 해도 한국인 특유의 풍습에서 나오는 언어는 전혀 이해하기가 힘들 다는 것을 우리도 외국어를 배우고 또 그들도 배우는 과정에서 느끼는점입니다. 아주 한국어를 뛰어나게 잘 배운 우리 외국인 학생들에게 “이 말은 모를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사춘기”를 설명하는데 “사춘”으로 알아듣고 엉뚱한 통역을 하는적도 있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같다” 이런 표현은 그 배경을 알지 못하면 도저히 알수 없는 표현들입니다. 한데 현지인을 키워서 자국의 선교사로 파송했을 때 얼마나 놀라운 열매를 맺고 있는지 현재 여러나라에서 하고 있는 우리 행복동 선교사님들을 보면 결과가 엄청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캄보디아사람들은 미소는 우리보다 더 잘 짓습니다. “독립수어”라고 손을 모아서 인사하면 거의다가 웃으면서 같이 인사를 합니다. 가지고 간 선물을 건네 주면서 전도를 하면 금방 웃으면서 잘 귀를 기울이는데 우리나라는 길에서 티슈 한 개 건네주면서 전도하는 교회들을 가끔 보는데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전도하면서 마음문을 여는 방법이 다르게 해야 하는것입니다.
한국에서 세례를 받았던 양쪽 어머니, 친어머니와 장모님은 아주 적극적으로 전도를 돕는데 잘하셨습니다. 장모님은 전에 간호사 출신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금도 도움을 주시기에 그들을 잘 알고 우리를 안내하셨습니다. 친어머니도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하이소밧이 무슨말인지도 모르는 한국어로 하는 기도시간에 같이 참석을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하셨기에 아주 확실하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열심히 믿음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저녁 계속 성경을 읽어드리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향해서 계속 전진하기를 다짐하고 돌아왔고 우리는 인솔하느라고 수고한 하이소밧선교사님은 우리가 돌아온다음에도 기쁨의 찬 목소리로 너무나 기뻐서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하는것입니다. 우리 일행도 직장 휴가를 내고 온 행복동 가족들도 전혀 피곤하지 않고 즐거운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우리는 항상 찬양합니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김영덕목사님의 시”
그분이 계시기에
캄보디아를 향하는 발길
가슴에 생수가 솟았고
마음에서 찬양이 넘쳤고
영혼에서 하늘빛이 빛났다
그분이 게시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가만나
마음이 하나되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영광의 길을 함께 가겠는가
하늘의 복이여
하늘의 은총이여
우리 비록 티끌 인생이나
그분이 계시기에
복의 씨앗을 심고 다니노니
하늘 바람으로 싹이 나고
이른 비 맞으며 자라고
늦은 비에 취하여 열매 맺고
시련과 시험으로 단련을 받으며
그분 안에서 큰 나무 이루소서
심겨진 생명나무
세워진 하나님의 집
함께하는 기도의 숨결속에
하늘 사랑으로 불타는 사랑
그분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역사이니
그분이 주시는 희망을 안고
그분이 주시는 양식 먹으며
그분으로 생수를 마심이여
하늘 양식으로 배루르고 풍요로와
생명수 강에서 헤엄치며 살리라
그분이 계시기에
행복한 마음으로
춤을 추며 하늘을 날고
하늘 사명 안고 단숨에 달려가
혼신을 다하며 하늘씨앗 심고 왔노니
그분의 심장을 가진자들
변함없는 마음을 어루만지며
천년을 하루 같이 하늘에 비노니
심어 놓은 복의 나무, 부디 무성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