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예수님을 보여주신 이기열선교사님”
최화전도사님은 신학대학원을 우리가 후원했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후원하고 집에서 데려다가 공부를 할수 있도록 해 주신분이 이기열선교사님이십니다. “권사님, 내 인생에서 이기열선교사님과의 만남과 홀리의 만남은 정말 다른 인생을 만들어주었어요. 만약 이기열선교사님이 나를 고등학교부터 집으로 데려다가 공부를 안 시켜 주셨다면 지금쯤 나도 한국에 공장이나, 식당, 병간호인으로 일하는 다른 조선족처럼 살고 있었을것이예요.”
이 말이 이번에 너무나 깊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최전도사님은 아주 똑똑해서 고등학교때 수석도 했고 연변 과기대도 우수한 학교이고 신대원도 석사로 잘 졸업을 했는데 만약 그렇게 공부를 할 기회가 안 주어졌다면 그 똑똑함을 인정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도사님은 늘 이런 간증을 하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이기열선교사님과 같이 살고 대학교때는 기숙사에 있다가 주말이면 집처럼 선교사님에게 갔었는데 조선족 장애인을 집으로 데려다가 대소변을 못 가리는 장애를 마다않고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선교사님은 오십대 초반에 여자로서 싱글이면서 중국선교를 떠나셔서 지금 17 년째 하고 계시다가 중국정부에서 선교사를 더 이상 머물수 없게 되어서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장애를 가진 자매는 16 세, 최전도사님은 15 세, 그런데 아침이면 꼭 대변을 줄줄 싸고 생리대를 바꾸어 주고 하면서 집은 방하나를 세를 얻어서 이선교사님, 최전도사님, 장애우 이렇게 살면서 화장실은 한참을 걸어가야 있는 그런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방하나에서 선교사님의 삶을 보면서 참 예수님이 어떤분이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한테 한것이라는 것을 삶으로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방한칸에서 살면서 지켜보면서 그분이 존경스럽다고 평가받았다면 그런 선교사님께서는 정말 작은 예수님이십니다. 최전도사님은 자신이 선교사님을 지켜보면서 선교사님이 어떤 삶을 살았다고 자신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것입니다.
보통 말과 혀로만 전도를 하여서 전도가 열매를 못 맺는데 선교사님은 삶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 선교사님이 최화전도사님을 큰 교회에서 생활비는 후원이 안되어서 힘이 들어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우리에게 부탁해 왔을 때 만나 본적도 없고 그분이 어떤분인지도 모르는데 한번 전화를 받고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김현길목사님부부도 이선교사님의 요청으로 우리 학생이 된 것입니다. 이선교사님이 신실하신분이라 성령님이 감동을 주신것을 느낍니다. 이봉선전도사님에게 처음 어떻게 이선교사님을 알게 되었느냐고 이번 방문때 자세히 물어보니 목사님부부에세 딸이 한명 있는데 어릴 때 뇌종양을 앓는데 부모는 돈이 없어서 병원에 데리고 갈수가 없는데 이선교사님이 돈을 내시고 병원에 데리고 다니셔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새 78 세가 된 전도사님은 지금 허리를 다치셔서 수술을 받고 허리도 다리도 잘 못쓰시면서도 아직도 자신이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중국에서 오가는 것보다 배를 타면 더 많이 전도를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선교사님이 마치 즐거운 여행을 자랑하듯이 하는 이야기가 감동의 미소를 짓게 하곤 했습니다. 참으로 이런 하나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늘 성경을 누구에게서 배웠느냐는 중요한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최화전도사님은 이곳에서 공부도 하고 결혼식도 시켜 주었는데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자신은 선교회에서 후원하는 후원비를 받지 않고 사역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그냥 둔 것이 아니고 한국인 장로님이 비비안리 여자 내의를 하면서 최화전도사님에게 중국에서 그것을 할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하여서 남편을 소개해서 남편은 그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남편은 그렇게 해서 중국에 아파트도 마련하고 친정부모님도 모시며 살면서 5 살된 딸 혜윤이도 주셨습니다. 이번에 전도사님이 그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번에 우리 모두 처음 혜윤이를 보게 되었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갈 때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많은것으로 채워주셨어요. 그리고 늘 몸이 아프다고 병원을 다니시던 친정 어머니도 외손녀와 같이 살면서 강건해 졌어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선교사님의 사랑으로 수고로 인하여 최전도사님 김현길목사님 이봉선전도사님을 세우게 되어서다시 이기열선교사님을 생각하며 존경을 표합니다. 이번 한국 방문을 해서 이기열선교사님 댁을 찾아가보니 상계동에 여러가구가 모여사는 그런 집에서 살고 계시면서도 여전히 조선족들이 오갈데 없으면 재워주시고 도와주신다는것입니다. 이선교사님은 중국을 떠나오면서 농아목사님가정을 계속 도와주셨는데 한국으로 오시면서 최전도사님에게 부탁해서 최전도사님은 농아목사님을 8 년째 돕고 있고 이선교사님에게 받은 사랑또한 이선교사님을 도우면서 자신도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서 두주동안 재충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올가전도사님, 최화전도사님, 이봉선전도사님, 마그나이목사님 모두 자국으로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더욱 다짐하며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하였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만남만있지 헤어짐이 없습니다.!!
잠시 한국에 방문한 시간에도 치료 진료를 해주신 이민희 선생님 김현아 선생님의 사랑에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마그나이 목사님은 2011 년 이민희선생님한테 치과 진료받고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