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믿음의 길을 걸은 그리스도인의 삶”
불행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의 차이의 글을 읽고 사람들이 궁금해해서 질문도 하기에 글을 더 써내려갑니다.
지금부터 약 30 년전 1989 년에 청년부를 맡아서 함께 말씀으로 양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청년들이 많이 함께 모였었는데 그중에서 너무나 잘생긴 청년부 회장과 부회장을 맡았었는데 그후 남편과 아내로 맺어졌습니다. 남편은 서울대 대학원을 나왔고 아내는 독일 유학을 했습니다. 독일 유학을 다녀와서 한양대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멋진 부부가 첫 아들을 낳았는데 두 사람을 닮아서 잘생긴 아들이었고 행복하게 신혼초를 지냈습니다.
결혼전, 그리고 신혼, 그 다음에 이어지는 생활들을 약 30 년에 걸친 이야기들을 옆에서 듣고 보고 같이 기도하면서 이 이야기를 기록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서 산후조리원으로 찾아갔을 때 남편이 보내준 축하 꽃다발을 보며 우리는 함께 웃으며 역시 잘생긴 아들을 바라보며 기뻐했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이 너무나 선합니다. 그리고 며칠후에 둘째가 태어난지 얼마지났는데 아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기는 그후 걷지도 못하고 정신 장애도 가진 아기라는 판명이 났습니다. 이 둘째가 태어나고 어느덧 20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옆에서 보고 놀라고 감탄도 되고 참 신앙인의 다른점을 보면서 이글을 적습니다. 엄마는 둘째 아들을 위해서 대학에서 강의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재활 치료를 매일 시켜야 하기에 엄마는 참으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아들을 사랑하고 키우는 모습은 늘 감탄을 연발하게 되었습니다.
아기가 일어서지 못하기에 목욕을 시키는일도 대단한 일이었고 아기를 먹이고 늘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고 이런 일들은 계속 일상이었지만 엄마의 사랑과 정성은 아들이 어느날 걸을 수가 있었고 학교에도 보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인지도가 좋아진다고 조금만 좋아져도 엄마는 자랑을 했습니다. 어느덧 이 아들이 스므살이 되었습니다. 일찍 엄마곁을 떠날까봐 그것을 늘 걱정 하였는데 엄마곁에서 아들은 처음 어릴때는 밝게 웃는 모습을 볼수가 없었는데 밝게 웃고 엄마가 주방으로 가면 전기불도 켜준다고 그런 작은 것 하나 하나 좋아하면서 사랑을 표시하는 엄마를 보고 참 대단하다고 늘 감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엄집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인생의 시간에 예수님을 안믿었으면 어떻게 살아왔을까요?” 우리는 같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산 행복한 삶을 감사했습니다.
아들을 바라보면서 사랑의 미소를 짓는 사진을 우리 딸에게 보여주니까 “언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랑의 눈빛이 참으로 변함없네~~”라고 하는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어릴 때 대학부나 청년부를 우리가 이름을 불렀기에 “언니, 누나”이런 명칭을 사용했고 지금도 그렇게 부릅니다.
청년부 제자들은 이년을 같이 성경공부를 나누웠고 내가 홍콩으로 떠나게 될 때 각자의 사진을 넣어서 앨범을 만들어서 제게 선물을 주었는데 지금도 그 사진을 가끔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우진이 영진이의 엄마인 엄선덕집사님의 사진이 보입니다. 그 사진은 아주 미인이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밝은 미소로 고백하는 모습이고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후 그런 상황에서도 같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일산으로 이사왔고 오랜 세월 같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겼으며 맡은 반 외국인들을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나누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자신과 같은 장애 부모들을 돕는 회장의 일을 맡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 우진이는 서강대에서 공부를 잘 하고 있고 동생을 안아주고 같이 사랑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길을 걷는 사람은 그 사랑이 어떤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는지를 배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