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
오늘 송학예배에 우리 행복동 해외에서 온 가족들과 같이 가서 특송을 불렀습니다. 정신지체를 가진 올가전도사님이 입양한 딸 안나는 찬양을 활짝 웃어가면서 얼마나 신나게 자기 자리에 앉아서 부르는지 앞에 서있던 나는 웃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나는 비록 친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았으나 참 행복한 가정으로 하나님께서 옮겨주셨습니다. 한국어는 전혀 모르는 것은 당연한 10 살 안나가 우리가 예배전 찬양을 하는데 신나게 따라 하는 모습에 같이 행복했습니다. 러시아어도 엄마 말은 알아들어도 말을 전체 구사하지 못하고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다니면서도 안나는 너무나 행복하고 밝았습니다. 그 행복이 우리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아이를 가진부모들이 아이들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는데 이렇게 장애아도 사랑하면서 스스로 입양을 자원한 부모를 바라본다면 자신의 불평이 부끄러워질것입니다.
손과 발을 전혀 쓰지 못하는 은주도 남편이 너무나 사랑하면서 같이 여행가서 찍은 행복한 사진을 오늘도 보내주어서 절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은주를 데리고 안고 내리고 휠체어에 실고 밀고 다니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일반적인 사람들 같으면 전혀 밖에 구경을 시켜줄 시도도 하지 않을것입니다. 한데 항상 기쁘게 하나님의 자녀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몸이 정상인인 것이 아니래도 손만 일주일만 사용할수 있어도 남편의 넥타이를 매주고 식사를 차려주고 행복하겠다고 은주는 소원을 갖는데 두 손을 멀쩡하게 가진 사람도 전혀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뿐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불행한 원인은 가진복 받은 복을 절대 보는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동역자로 오래 같이 일했고 지금은 장애우들을 돕는 부모의 회장으로 일을 하고 있는 엄선덕집사님에게 응원의 박수를 쳐줍니다. 정신지체일뿐 아니라 신체가 축 늘어져서 전혀 걸을수도 없고 문어발처럼 늘어진 아들을 키우면서도 엄마는 사랑으로 이 아들을 키우고 기도로서 이 아들이 지금은 정상인처럼 걸을수 있고 인지도도 많이 좋아진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아들을 데리고 다닐 때 비가 오면 우산을 쓸수도 없는 상태이고 그런데도 한결같이 아들을 사랑하면서 늘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권사님 나는 이런 모습이래도 아들이 살아있는것만으로도 감사하답니다. 일찍 내곁을 떠나지 않기를 기도드린답니다.” 저는 옆에서 지켜보기에 집사님의 고백이 사실인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식물인간이 된지 7 년이 된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면도해 드리고 사랑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의 글을 나누니까 어떤 분들은 아버지가 그렇게 병석에 눕기 전에 얼마나 자녀를 사랑했으면 그렇게 대접을 받겠느냐고 하는 분들도 더러 있는데 내가 들은 이야기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과 아닌 사람의 차이, 행복동에서 사는 사람과 불행동에서 사는 사람의 차이, 스트래스 받는것과 아닌것의 차이는 상황을 보는 눈이 다른것입니다. 불행동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상처만 생각하고 좋은 점 감사한점은 뒷전입니다. 행복동에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상처보다는 자기 자신을 일체 오래 참아주신 주님을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의 부족함도 덮어 줄수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중에 괴수인데 어찌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따질수가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받은 복을 헤아릴줄 압니다. 그런 모든 어두움에서 구원 받은 감사를 압니다. 그 사랑에 감격해서 주님이 부탁하신 일을 기쁘게 할 수가 있는것입니다.
받은 복을 셀 줄 안다면 자족하게 될 거예요
자족하면 늘 배부르고 불평은 사라지고
행복의 향기가 넘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