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와 요한의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
창39:20-23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저보다 앞서 걸었던 믿음의 선배들중 다윗과 요셉을 좋아하는 저는 특히 이 두사람의 믿음을 더욱 닮기를 원합니다. 이번에 어머니가 예배실에서 면회를 하는 시간에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자세히 해주셔서 요셉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되면서 제가 왜 그토록 요셉의 믿음을 닮고자 하는지 또 왜 그토록 배우려 하는 지를 다시 한번 더 새겼습니다.
예배실에서 만나는 그날은 정성드려 싸오신 음식으로 정말 풍성하게도 많이도 먹었지만 음식은 되돌아서 다시 공장으로 가는 중에 이미 소화가 다 되었고 어머니와 또 우리 홀리 가족들이 함께 정성 드려 한 아름 담아와신 귀한 말씀과 귀한 사랑을 어찌나 많이 받고 또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음식이 아닌 이것을 소화를 시키고 담아두기위해 지금도 꽤나 무지 애를(?) 쓰고 있습니다 ^^
어머니! 요셉과 같은 사랑이 저에게도 일어나니 참으로 어리둥정하기만 합니다. 매번 같은 일이 반복이 되면서도 매번 이런 넘치는 사랑을 받을때마다 제가 과연 무엇이관데 이런 넘치는 사랑을 받게 하시는지 이보다 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사랑을 제게 주신다고 해도 저는 똑 같은 생각을 매번 똑 같이 할 것 같은데……
어머니!
저도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홀리네이션스를 섬기며 제가 잘하는 운전을 하면서 저를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섬기는 일을 하는 그런 기분 좋은 상상을 말입니다. 제가 그런 자격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쓰임 받을 곳이 있다면 그때는 무엇이든 주저 않고,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할것입니다.
주님께 맡긴 자요, 주님의 길을 가려는 자, 저 요한이 이제는 뭔가 받는 일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무엇이든 주는 일에 더 익숙해지고 싶습니다.
항상 귀한 가르침, 또 귀한 것을 보게 하시고, 풍성한 마음을 갖게 하시는 우리어머니께 너무도 감사드리고 어머니 너무나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엄마,
넣어주신 참치와 떡갈비로 인하여 오늘, 주일 아침에 다른 날보다 좀 더 맛있는 샌드위치를 20 여명의 형제들과 나눌수 있었습니다. 매주 주일 아침에는 식빵 4 조각과 샐러드가 지급되거든요. 샐러드에 참치를 넣고, 또한 떡갈비는 작게 으깨어서 함께 넣어 섞어서 식빵위에 듬뿍얹어 샌드위치를 만들면 됩니다. 간단하게 만들어 지지만 참치나 떡갈비가 고가의 음식이다보니 많은 분량을 단박에 아깝지 않게 나누는 저의 모습이 어떤 형제에게 꽤나 의아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교도소에서는 불우하게 생활하는 이들에게 속옷을 3 개월, 혹은 6 개월에 한번씩 지급하여 줍니다. 신청자에 한하여 주는데 자존심이 강한 이들이 대부분이라서 얻어 입을 망정, 교도소표 속옷은 입으려 하지 않지요. 구매품과는 확연히 다른 것 임을 알수 있거든요…바깥 세상에서는 그래도 잘 나갔다고들 하는 자존심이 강한 이들에게는 교도소표 옷을(속옷) 입고 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부끄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하며 지냈던 적이 있구요 ^-^
샌드위치를 만드느라 음식물이 묻은 손과 발 바닥을 딱은 걸레등을 세탁하고 샤워를 하고서 나온 저의 모습을 본 형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투로 제게 묻는 것입니다. 왜 속옷을 교도소 표 것을 입고 있느냐구요. 행동하는 것을 보면 범털(경제범) 같은데 모르른 사람이 저의 속옷 행색을 보면 고도소의 신세를 지는 쥐털 처럼 나이들어 초라해 보인다고 합니다. ^-^
사랑하는 엄마!
제가 어디를 다니든지 새로운 곳에서 지내게 되면 가끔씩 형제들에게 듣는 소리입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바라 볼때에는 또 마음으로 들을 때에는 상당히 자존심 상하는 쥐털 스럽고 초라해 보인다는 소리지만 제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모습이 제 이기심과 욕심의 옷을 벗고 있음이 알아지는 기분 좋은 소리로 들려집니다.
사랑하는 엄마!
교화 방송의 T.V. 뉴스를 보았습니다.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인하여 가로수가 뿌리째 뽑혀 넘어지고 고층 건물의 외장제가 뜯겨져 날아가며, 바닷가 부두에 배들을 묶어 놓은 굵은 밧줄도 끊어져, 배들이 태풍에 밀려 방파제들에 부딪혀 부서지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순간, 세상에서 불어오는 태풍앞에 놓여있는 우리네 모습도 T.V. 속의 모습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태풍앞에 요동치는 삶을 동여맨 밧줄을 속으로 꼭 붙들고서는 오로지 제힘으로 이겨 내겠다고 버텨 내겠다고 의지를 불태워도, 우리네 인생은 의지할 가치 없이 흔들리는 낙옆에 지나지 않음을요….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풍랑이는 바다 위에 배 안에서 눈에 힘을 바짝주고 또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히도록 노를 쥐고 돛을 세워도 불어오는 바람앞에 절망하고 체념해 버리듯이 언제 뒤집혀 질지 모르는 인생의 배를 타고 죽는 날까지 애만 쓰고 마는 것이 우리네 모습임을요.
사람들은 알지만, 모르는게 하나 있습니다. 제가 교도소표의 속옷을 부끄럼 없이 자신 있게 있을 수 있고 내게 있는 것을 아끼지 않고 범털처럼 나눌수 있는 것은 그 누군가가 풍성하게 부어주신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우리네 인생이 부질없이 흔들리는 낙옆 같다는 것은 알지만, 누군가 동승해 함께 하신 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세차게 퍼붓는 비바람과 요동치는 바닷물결에 담긴 죽음이 다고 오고 있음은 알지만 이 모든 사실을 아시면서 잠드신 척, 아니 잠시 침묵하고 계시는 그분을 모릅니다.
이 사실을, 절망과 공포로 주눅든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우리의 부끄럼과 부족함을 영광과 풍성함으로 함께 하시는 그분이 계심을 알고 있는 제가, 그분만이 거친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고요한 평화가 찾아오게 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제가 만나는 인생들께 알려야 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꽃을 보려면 작은 채송화라도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합니다
그 앞에서 무릎도 끓어야 합니다
삶의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엄마,
주께서 마련해 주시고 가꾸는 사명을 주신 이 사랑의 꽃밭에서 사랑스래 피어나는 복음의 꽃들을 보기 위해서든 더욱더 가볍게 저의 고개를 숙이고 더욱더 겸손하게 모릎을 꿇어야 하겠습니다. 두려움에 또 절망과 실망속에 있는 인생들안에 계신 주님을 그들 스스로 깨닫고 흔들어 깨우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아들이되도록 응원해 주시고 강건하심으로 늘 복된 날들이 되시기를 아들도 응원합니다. 행복동 가족들과 이모님과 사모님들과 집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