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배우는 수련회”
전에 의정이가 향유의집에서 장애우들을 위해서 계단으로 되어 있지 않고 비스듬한 비탈길로 되어 있는 몇층을 굴러서 매일 운동을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의정이는 손과 발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항상 엎드려 있는 상태로 늘 있기에 자신의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 그렇게 운동을 했습니다. 의정이는 손과 발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입으로 펜을 물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서 “시”도 많이 쓰고 그랬기에 우리는 행복동 식구들이 하루는 같이 그곳에 가서 몇층을 같이 굴러내려오면서 운동을 해보았습니다.
이 현장에서 배운 수련회 강의는 말이 필요가 없는 강의였습니다. 모두들 어지러워서 정신을 못차리겠다고들 하면서 장애우면서 그런 자기 관리를 하면서 주님 사랑하는 모습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요양원에 가면 인생의 가는 종착역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때는 세상에서 신나게 달려갔을 그분들이 한 방에 여러명이 누워 있으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분들은 아주 상태가 양호한 측에 속한분들이고 그렇지 않을때는 호수를 코에 끼고 손에는 장갑을 끼워서 마음대로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을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처음 상태가 보통이다가 더 심해지자 중증 환자들이 입원한곳으로 옮긴곳에 아침 일찍 다른 직원이 없을 때 가면 참으로 여러가지를 보게 됩니다. 조선족 직원이 할아버지들에게 기저귀를 갈아채워 주는데. 처음에는 이 할아버지가 직원에게 소리를 크게 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좀더 세월이 지나자 조선족은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 지르니 꼼짝도 못하는것입니다.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전직을 가졌을때 한가닥하는 분들도 있을터이지만 성경에 가르침이 사실인 것을 현장수련회에서 배울수 있는 시간입니다.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말씀을 길게 풀어서 원어의 뜻이 무엇이고 해설을 들을 필요가 없이 현장에서 그대로 보여지는 배우는 말씀의 교훈입니다.
요양원에서 누워 있는 사람들이 통장에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는 기저귀를 채워주는 조선족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 돈으로 그를 존경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상태가 되기 전에 있는 탈랜트를 모두 동원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길을 택하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것입니다. 그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의사선생님은 30 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은 젊은 시절에 “그 귀한 세월 다 보내고 주께 옵니다 “ 하는 삶이 아니었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일찌 알고 실천을 한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는 것을 배우는 수련회에 초청합니다. 수시로 시간을 내어서 요양원에 한번씩 가는 것이 좋은 수련회 입니다.
“최고의 엄마” 책에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행복에 도취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보라. 하루 종일 언짢은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라. 그러면 당신의 기분도 덩달아 좋아질것이다. 베푸는 삶이 즐거움을 논하는 책을 읽는다고 즐거워지는 것이 아니다. 몸소 베풀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건데 불평불만을 해소할 최선의 방법은 사랑을 베풀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것이다. 엄마가 봉사의 기쁨을 배우면 가족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줄수 있다.
나는 예전에 지적발달장애들을 위한 스페셜 올림픽경기에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신청했다. 막상 봉사를 하러가야 하는 그날 아침이 되니 괜히 신청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두 딸들과 함께 마지못해 경기정으로 향했다. 약속은 지켜야 했으니까, 두 딸들도 별로 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렇게 즐거운 표정은 아니었다.
경기창에 도착했더니, 우리 세 사람은 각기 다른 보치볼 경기에 참가하도록 배정되어 있었다. 보치볼 경기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연습을 좀 해야 했다. 그런데 게임이 시작되자, 내키지 않았던 기분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날 우리가 한 일은 참가자들을 격려하고 안아주고 도와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봉사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온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우리는 배웠고, 도와주었고, 환성을 지르며 응원했다. 저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온 여러 인종의 사람들, 어린아이에서 노인도 키가 큰 사람에서 작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스페셜 올림픽 참가자들의 기쁨과 열정은 전염성이 있었다. 우리는 활짝 웃으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기꺼이 안아 주었다.
나는 그 날 오전에 기쁨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돈으로도 이런 삶의 교훈을 살수는 없다. 내 두 딸들과 나는 베푸는 삶이 주는 진정한 기쁨을 경험했다. 엄마로서 딸들에게 ‘받는것도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거야’ 라고 백날 떠들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내 딸들은 실제로 행함으로써 분명하게 그 메시지를 터득했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노숙자에게 먹을 것을 베풀고, 곤궁한 가정을 방문하였다. 그때마다 가슴 벅찬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내 딸들이 배울 것은 무엇일까 딸들은 현재 대학에 재학중인데, 다니고 있는 대학 인근의 지역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