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의 간증
제 이름은 웬디 헤르난데즈, 필리핀 사람이고, 39살입니다. 칼 웨인이라는 8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캐톨릭 가정에서 자랐지만, 여러 가지 난관과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제 사랑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저를 먼저 사랑하셨지요.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 것을 깨닫지도 못한 저를 먼저 선택하셔서 소중한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까요. 제 간증은 2006년 여름, 한국에 온 때부터 시작됩니다.
저는 제 자신과 가족에 대한 큰 꿈을 안고 한국에 왔습니다. 하지만 도착 후 3일 만에 제 꿈은 산산조각 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가 일하기로 한 회사가 부도가 나서 며칠 후면 완전히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직업훈련소 담당자는 우리를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어요. 친구 두 명과 저는 숙소를 찾지 못한 채, 직업훈련소를 나와 고용센터로 갔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 특히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교회 전화번호를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쉼터 대신 혜화동교회로 가고 싶다고 했어요. 그곳에 필리핀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센터 직원은 일산에서 멀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쉼터에 가기로 했어요. 겁이 나기는 했지만, 이 상황을 피해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은 안했습니다.
마마킴과 윤 권사님을 만나다
우리는 무척 걱정이 되고 겁이 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잠시나마 안전한 숙소를 허락해 주시기만 기도했습니다. 그 때 만난 윤 권사님은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망설임 없이 우리가 쉼터에 있도록 해주셨어요. 그 분의 눈 속에는 우리에 대한 염려와 사랑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제 머릿속은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홀리네이션스에는 그런 사람들이 무척 많았어요. 이전에는 겪어 보지 못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무런 보답도 기대하지 않고 남들을 도와주다니요! 게다가 그런 분들이 이제는 제 가족이 되었으니, 전 참 복이 많습니다.
우선 일자리를 구해주셨습니다. 쉼터 생활 2주 만이었어요. 그 사이 마마킴을 만났는데, 윤 권사님과 똑같았어요. 주님의 신실한 종이자 청지기였지요. 우리는 쉼터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참여했습니다. 마마킴은 늘 성경 읽기를 강조하셨어요. 매일 먹어야 살 수 있는 비타민이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필리핀에 있을 때 교회에 다녔지만, 성경을 읽지는 않았어요. 성경책도 없었답니다. 마마킴은 우리 세 명에게 직접 싸인을 하신 성경책을 한 권씩 주셨어요. 호기심도 많고 독서가 취미인 저는 바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저는 고향생각이 날까 봐 일부러 일을 찾아 하던 때였는데, 하나님이 제 마음을 만져 주셔서 성경에 마음이 열리는 것을 느꼈어요. 그제야 마마킴이 말씀하신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구절이 기억났습니다.
저는 계속 일하면서 조금씩 본국에 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돈이었어요. 제가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엄마 혼자 저희들을 키우신 터라 우리는 계속 집이 없이 세를 살고 있었습니다. 제가 외국에 나와 일을 하는 것도 집을 마련해서 식구들을 편히 살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드디어 우리 가족이 우리 집으로 이사 들어가는 날이 왔습니다. 실은 아직 미처 완공도 안 된 상태였답니다. 그 후 첫 휴가를 얻어 고국에 돌아간 저는 고생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아직 완공 전이었지만, 저는 매우 행복하고 감사했어요. 외국생활이 무척 힘들었지만 잘 이겨낸 것, 그리고 이것이 모두 내 꿈을 이루게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주님 덕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첫 휴가를 보내면서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젊은 시절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만의 가족을 이루고 싶어졌습니다. 당시 저는 생전 처음 연애를 시작한 때였어요. 제 인생을 함께 하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고 싶었어요. 그래서 휴가 동안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이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제 계획이었어요. 당시 저는 열애 중이었고 제 생각은 투철했습니다. 이 계획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고 제 욕심을 추구했지요. 가끔 교회를 빠지기도 했습니다. 남자친구를 교회에 데려가기도 했지만, 종교와 전통이 다르다보니 계속 데려갈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매일 전도하려 애를 쓰기는 했습니다.
아기를 갖다
계획은 성공하여 아기를 가졌지만, 정말 힘든 임신기간을 보냈습니다.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어요. 어지럼증은 없었지만, 계속 구토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처음 3개월 동안은 점심시간마다 토했어요. 가족들은 제 임신사실을 알았지만, 교회에서는 몰랐습니다. 아주 친한 친구만 알았어요. 지금도 언니 같은 친구입니다. 아무 것도 못 먹고 계속 구토에 시달리자, 하루에 2번씩 병원에 가게 되었고 위궤양도 생겼어요. 마지막으로 일산에 있는 병원에 갔을 때, 제가 그 친구에게 간청했습니다. ‘제발 교회에 알리지 말아달라고. 너무 부끄럽고 죄스럽다고.’
하지만 친구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마마킴과 윤 권사님께 알렸고, 윤 권사님이 병문안을 오셨습니다. 저는 정말 부끄러워서 낯을 들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때마침 의사가 제게 복통 완화를 위해 주사를 놓으려고 했었거든요. 권사님은 제게 주사를 맞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셨어요. 만일 그 때 권사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저는 평생 후회할 실수를 할 뻔 한 것입니다. 한국어를 약간 할 수는 있었지만, 의사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제가 주사로 인해 아기에게 올 부작용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다면 말이지요. 그런 권사님이 계시니 마치 엄마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권사님은 제게 시편 23편(저는 어디나 성경책을 가지고 다닙니다)을 읽으라고 하시고, 제가 다른 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곳 쉼터로 데리고 오셨지요. 그러자 기적처럼 통증이 사라지고 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나를 사랑하셔서 내 불행을 막으셨으며, ‘내가 너를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 내가 너를 결단코 버리지 않으리라’는 히브리서 말씀처럼 당신의 자녀를 구원하시려 당신의 방법을 사용하셨음을 알았어요. 그제야 저는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저의 모든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고 난 후, 저는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주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을 누렸습니다. 순조롭게 아기를 낳은 저를 홀리네이션스는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셨고, 특히 영적으로 큰 도움을 주셨어요. 아들이 태어났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저의 전철을 밟지 않게 하리라고 다짐했어요. 아들아이는 필리핀으로 돌아가기 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제가 어려운 결정을 했기 때문이지요. 아들은 필리핀으로 보내고 저는 한국에 남아서 일하기로 한 것입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어요. 저는 일을 계속하면서 매일 화상통화로 아이를 챙겼습니다. 한국에 남은 남편도 교회에 나오게 되어서 저는 그가 예수님을 알게 되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어요. 그 후 저는 2년 더 일을 했고 우리 부부는 둘 다 세례도 받았습니다. 제가 벌어서 필리핀에 보낸 돈은 거의 아들 양육비와 집 짓는 비용에 쓰였어요. 저는 가족들이 더 잘 살게 되는 것만 바랐기에 저를 위한 저축은 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고향에 가다
고용계약이 끝나고도 5달 동안 더 일을 하느라 불법체류자가 된 저는 체포당했고, 강제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교회, 그리고 남편에게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없었어요. 당시 남편도 불법체류 상태였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인사도 못하는 것은 정말 슬프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별다른 도리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으로 가야 했지요. 물론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 기쁘기도 했지만, 슬픔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아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2년 동안 우리들을 부양했어요. 우리는 떨어져 있으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지만, 둘 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화상통화로 이야기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이는 아빠를 알아보고 좋아했지만, 저와의 대화는 오해가 많아져서 통화가 끝날 때쯤에는 항상 말싸움이 되고 말았어요. 그러다가 연락이 끊겼습니다. 마지막 통화는 제가 유학을 위해 서류를 준비하던 때였어요. 당시 저는 고정된 직장이 없이 집 앞에 있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는 생활비 충당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직후여서 더 힘들었어요. 한국에서 일할 때 봉급을 모두 본국에 송금하느라 따로 저축한 돈이 없었던 데다 엄마의 돈 관리도 허술했던 터라 빚마저 진 상태였습니다. 엄마는 제 아들 양육비로 쓰느라 우리 집에 대한 토지 대금은 엄두도 못 냈다고 하셨어요. 저는 절망감과 함께 자기연민에 빠졌습니다. 또한 아들의 장래에 대해서도 암담한 심정이었어요. 그것이 제가 다시 유학을 가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어요. 저는 하나님께 엄마를 믿지 못하는 제 마음에 대해 회개 기도를 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남편과 연락이 안 되는 것보다 더 괴로웠습니다. 엄마에게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현실을 마주하니 저도 모르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었어요. 그 때 저는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녔습니다. 홀리네이션스에서 느꼈던 것을 찾아 헤맸던 것 같아요. 돌아보니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겠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예수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하지만 그 때는 가족 같은 느낌이 절실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때 마마킴이 제게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러워 망설였어요. 전에 한국에서 쉼터에 있을 때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부러운 적은 있었지만, 아주 진지한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신학을 공부할 기회가 오다니! 커다란 특권이자 동시에 엄청난 부담이었어요. 머릿속에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부름인가?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나는 아주 영리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인데, 이런 특권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을까?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 나이에 이런 기회가 쉽게 올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또 학생으로서의 부담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제가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기도와 금식 끝에 저는 마마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어요.
학생으로서의 나
마마킴의 제안을 수락한 후, 저는 입학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했습니다. 과연 비자가 나올 것인가에 대해 걱정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였지만, 옷과 기타 필요한 물품들을 다 마련했어요. 드디어 나온 결과는 비자 발급 불가, 이유는 제 불법체류 경력이었습니다, 우리의 금식과 기도가 모자랐던 모양이구나 싶었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대사관에 있던 저는 눈물을 터뜨렸고 곧바로 마마킴에게 문자를 했어요. 저를 위해 수고해 주신 분들께 좋지 않은 결과를 알리게 되어 무척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마마킴은 다른 제안을 하셨어요. 포기라는 걸 모르는 마마킴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대신 필리핀에 있는 좋은 신학교를 찾아서 입학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셨습니다. 마마킴은 정말 놀라운 분입니다. 저를 정말 사랑하셨던 거예요. 저는 제게 보여주신 신뢰가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홀리네이션스 장학생들은 모두 한국에서 공부하지만, 상황이 다른 저는 본국에서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기막힌 생각이지요!
저는 마마킴의 말씀을 따라 신학교를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마음이 산란하고 두렵기만 했어요. 필리핀에 있는 수많은 신학교 중에서, 우선 집에서 가장 가까운 PTS 신학교에 가보았습니다. 집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였어요. 그냥 상담만 하러 갔는데, 직원이 제게 입학시험을 보라고 했습니다. 후원자에게 기쁜 소식을 줄 수 있다고 했지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시험에 붙으면 신학 공부를 하고, 아니면 그만두어야지.’ 아직 시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한 생각이었지요. 하나님의 뜻으로 저는 합격하였고, 그동안 이년의 공부를 마치고 이제 3학년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신학생이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적응 과정을 비롯한 많은 어려움을 견디고 제 자신을 희생하기도 해야 했지요.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저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해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제 모든 것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다는 것을 기억했어요. 내 삶을 통해 주님의 뜻이 펼쳐지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비자 발급이 안 된 것은 제가 필리핀에 남아 아들을 돌보면서 공부할 수 있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계획이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각각을 위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은 계획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고 있고, 내년이면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결론
때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 주님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제까지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제가 믿음을 잃어버렸을 때마다, 하나님은 주님만의 방법으로 저를 회복시켜 주셨어요. 거기서 배운 큰 교훈이 바로 이것,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 특히 시험당하는 자녀들에게 하신 약속을 꼭 붙들고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성경 전체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많은 좋은 구절 중에서도 이 구절은 특별히 제게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저는 이제 주님의 신실한 종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제 3학년으로 진급할 터인데, 공부하는 중에 닥칠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강하고 용감해져야 합니다. 저는 순탄한 길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를 강하게 붙들어주셔서 제 앞에 나타나 방해하는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진정 살아계신 것을 믿습니다. 또한 저의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여호수아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것이 지금 제가 푯대를 향해 달려가야 할 이유입니다. 제 푯대는 하나님이 천국에 마련해 놓으신 영원한 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