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과 소금으로 – 고양 의선교회~~땅끝까지 인술을 (동아일보 연재)”
“나 이한종(74)은 이제 살수 있는 날이 얼아 안 남은 것 같습니다. 거동도 힘들고 복수는 점점 차오릅니다. 호흡도 버겁습니다. 희망 없이 살던 저였습니다. 그런 제게 한 줄기 희망을 쥐여준 분들에게 이제는 얼마 되지 않는 저의 전 재산을 드리고 싶습니다. 임대 아파트 보증금 200 만원, 살수 있다는 희망보다 더 큰 희망은 내가 사랑 받으며 이 세상 떠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의선교회에 헌금으로 드리니 부다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2010 년 11 월 18 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있는 의선교회 (예장 통합) 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이명동 담임목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저희가 안 받을까 봐 거동도 힘드신 분이 법무법인 사무실에 가서 공증까지 받아 놓으셨더라고 요. 몇 번을 사양했지만 한사코 쥐어 주시는 어르신의 손을 붙잡고 저도 울고 어르신도 울었습니다.”
교인도 아닌 이 씨가 의선교회와 처음 만난 건 2009 년 한 복지관을 통해서였다. 신자 중 의사 간호사들 40 여명의 의료진이 매월 복지관을 찾아 몸이 불편한 지역 주민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던 중 거동이 불편한 이 씨의 소식을 들었다. 집에 찾아가보니 이 씨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고 복수까지 차올라 천식과 탈장 증상을 보였다. 그날 이후 교회 측은 매월 이씨를 방문해 진료와 약 제공, 생활비 지원, 이불 빨래 등을 해주고 있다.
의선교회는 1981 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의료선교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기독교인 의사 28 명이 “의료선교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자””는 취지로 교회를 세우고 방글라데시로 의료 선교 봉사단을 파송했다. 이렇게 시작된 의료봉사는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1997 년 경기 고양시로 옮겨와 매월 셋째 주일에는 내과, 치과, 정형외과, 통증외과, 정신과, 피부과와 한방들 다양한 분야의 진료를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하루 평균 150 명의 사람이 진료를 받고 약도 타간다. 주민들은 의선교회와 의료봉사팀을 “종합병원”이라고 부른다. 1 년에 하루는 지방 의료 봉사의 날, 지금까지 제주 북제주, 충남 몽산포, 인천, 강화, 충북 옥천들의 지역을 방문해 진료, 약 처방, 미용, 영정사진 촬영 등 다양한 봉사를 해왔다. 한번 지역이 정해지면 3, 4 년간 지속적으로 방문한다. 지난해는 충북, 옥천군, 청산면, 옥천노인장애인 복지관에서 600 여명을 진료했다. 옥천 방문은 네 번째다. 방글라데시, 몽골, 미안마등 해외에서도 꾸준히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몽골 의료봉사를 갔던 한상환씨는 다리를 다친 한 소년의 긴장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다리에 뼈가 보였죠. 피부 조직은 썩어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방치했다가는 다리를 절단해야만 할 상황이었어요. 보호자도 없고 치료해 주겠다고 나서는 이 하나 없는 어린 소년을 저희가 데려와 다리를 잃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 담임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신 두 가지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을 그대로 행한 것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취재를 위해 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 교회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작은 교회 건물이 그 흔한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 하나 없이 주변과 어우러져 있있다. 최근에 처음 온 대학생들이 교회를 “북 카페”로 오해하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고 한다. 교회 앞엔 아담한 연못과 푸른 나무, 벤치가 어우러진 작은 뜰도 있다. 흰 깃발이 꽂힌 종탑이 한 가운데 세워져 있다.
“교회는 크고 웅장한 건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베푸는 사랑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요. 교인 부흥을 목표로 삼기보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 ‘의롭고 선한 교회’가 되는 것이 저희들의 꿈입니다.
이 목사의 말이다. ‘의선교회’라는 이름에는 ‘의료선교’의 뜻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의롭고 선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을 외면하고서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