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빛과 소금으로 – 전남 광양 대광교회~~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교회(동아일보 연재)”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을 섬길 때 지역이 어느곳이든 그물이 찢어지는 이야기가 연속되고 있습니다. 이웃사랑을 할 때 이 교회도 80 명이던 신자가 1500 명이 넘게 출석하고 있습니다.
~~전남 광양시 중흥동 제철소가 멀지 않은 곳에는 뜻밖에도 교회가 들어서 있다. 광양 대광교회(전남 광양시 중흥동 예장통합)는 기존교회와는 상당히 다르다. 본당 뒤편으로 가면 놀이동산에서 봤을 법한 이정표가 나온다. 왼쪽에는 사무실이 있는 아로마센터와 아가페센터, 아름다운 가게, 아로마요양원 푯말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카아 카페, 엄마랑 아기학교, 어린이집, 소극장, 교육원이 차례로 나온다. 교회의 큰 울타리도 없고 건물 사이에는 도로도 있다. 아카라(물), 아로마(향이), 아가페(사랑)는 교회가 추구해온 정신을 상징한다.
위압적인 풍모의 교회당을 자랑으로 여기는 일부 개신교계의 시각에서 볼 때 이 교회의 모습은 파격에 가깝다. 이 교회는 더 높이, 더 크게 건축하려고 경쟁하는 대신 신자와 지역 주민을 위한 시설을 늘려왔다. 그래서 이 교회는 지역 사회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교회”로 불린다. 광양 대광교회는 개신교계에서 “사회복지형” 모델로 손꼽힐만하지만 1993 년 개척 당시만 해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본당만 덩그러니 있었고 주변의 아파트 몇 채를 빼면 공지가 대부분이었다. 변화는 1997 년부터 시작됐다. 서울 연동교회 교역자 출신으로 2 대 목사로 부임한 신정 목사는 연고가 없는 외지인이 많고 문화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역 현실에 주목했다. “엄마랑 아기학교”와 “임산부학교”가 잇달아 생겼다.
“처음 이곳에 와 보니 여성, 특히 임산부를 돌보는 시설이 전무 하다시피 했어요. 남편이 제철소나 직장으로 출근하면 여성은 거의 외톨이였습니다. 친정은 멀고 친구도 없이 임신한 상태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신목사)
임산부학교는 임산부의 건강과 태교, 음악, 모유, 수유등을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큰 호응을 받았다. 매년 2 기씩 약 1,000 명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엄마랑 아기 학교는 한마디로 엄마는 쉬고 아기는 자유롭게 놀수 있도록 배려한 프로그램이다. 엄마와 24~36 개월된 아이들이 새당으로 지금까지 2500 여명이 수료했다.
엄마에서 시작된 교회의 사회 나눔 활동은 어린이와 청소년, 중장년, 노인층으로 확대됐고 본당 주변에는 이들을 위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이 기간 순수교회 시설에 투자한 것은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 발코니를 조금 늘린 것 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신목사는 “목회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바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이웃이 우선이라는 생각 이라며 강요하지 않아도 교회 활동에 익숙해진 분들이 신앙을 갖게 됐다. 그래서 처음 취임할 때 80 명이던 신자가 1500 명이 되었다” 라고 말했다.
실제 교회에 개설된 모든 프로그램은 신자와 비 신자 구분 없이 동등하게 개방돼 있다. 주중에 1000 명 이상이 교회 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중 70% 이상이 비 신자다. 아로마 센터만 해도 맨 위층부터 소 체육관, 지역아동 센터, 탁아원, 상담실, 다문화가정지원 센터들이 들어서 있다. 초등하교 5 년 학생은 “시간이 날 때마다 교회에 들러 문제집도 풀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논다”고 말했다. 아쿠아센터에는 주민들의 휴식을 위한 카페도 있다. 지역과 함께 걸어가고 성장하자는 교회의 정신은 신자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카페에서 만난 신자는 “교회가 고향과 생활수준, 신앙, 나이들이 다른 주민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며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자원 봉사도 하면서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주일에만 쓰는 건축을 하겠다는 교회 건축보다도 소외계층을 위한 지원을 할 때 사람들은 교회로 마음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