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삼열 선교사님 (2)”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주님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증인이 될수 있는가? 땅끝까지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이런 모습을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조지뮬러에게서는 말씀을 근거로 할 때 기도가 전부 응답된 사람이라는 칭호가 붙었고, 허드슨 테일러는 아들이 고백한 글에서 전에 호텔이 없이 여러 사람이 한방에서 거하는 주막 같은 곳에서도 새벽에 한쪽에서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기도에 관한 책보다 기도를 배웠다고 고백하였고, 마포 삼열 선교사님은 아들이 아버지는 마치 친한 친구하고 이야기 하듯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양화진에서 묘비에 쓰여 있는 글 하나 하나는 참으로 깊은 감동과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해준 것을 너무나 감사했던 장소이고 따라가고 싶었던 모델들입니다. 처음 의사로서 한국인을 위해 너무나 과로한 결과 헤론 의사는 일찍 본향에 갔습니다.
마포삼열 선교사님은 헤론 의사의 첫번째 장례식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해론 의사가 1890 년 7 월 26 일 우리 곁은 떠나 주님 곁으로 갔습니다. 월요일 오후에 서울에서 약 4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매장했습니다. 그곳은 우리가 한국 정부의 외국인 묘지를 별도로 마련하도록 하는데 성공하여 얻은 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양화진이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그곳은 강이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장소이며, 우리는 이제 한국 땅에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첫 번째 외국인의 모습은 한국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 선교사의 무덤입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한국인들의 큰 슬픔과 해론 부인에 대한 모든 사람의 동정과 자신의 봉사에 충실했던 이에 대한 수 많은 사랑과 관심의 표현을 글로 제대로 전할 수가 없습니다. 아픈 그를 간호하기 위해 많이 긴장했고 슬픔 감정을 겪은 다음이라 우리의 몸은 허약하고 우리의 마음은 너무 침울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헤론 부인과 그녀의 장래로 향합니다. 물론 헤론 의사는 그녀에게 약간의 개인적인 재산 외에는 실제로 남긴 것이 전혀 없습니다. 얼마 전에 그가 생명 보험에 가입하려고 했으나 의료 면허증에 의사의 서명을 하지 않은 단순한 실수 때문에 얻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리 모두는 헤론 부인이 이곳에 남기를 희망합니다. 그녀는 여성들을 위한 사역과 여학교와 연관된 사역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여러 해 동안의 훈련이 없으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녀는 현지에 있는 누구보다도 여성 사역을 많이 했고 감리회의 한 여성 선교사를 제와 하면 누구보다도 한국어 실력이 좋습니다. 그녀가 남아서 한국을 위한 헤론 의사의 사역을 마무리하기를 원한다과 하는 말씀 오늘 들었습니다.”
이렇게 선교지에 와서 의사로서 자국에서 편한 삶을 살수 있었을 터인데 그 길을 택하지 않고 한국인을 위해서 너무나 과로해서 일찍 세상을 떠난 헤론 의사인데 그 아내는 계속 해서 한국에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한 그 발자취가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다시 한번 그 수고에 감사를 보내드립니다. 이런 분들로 인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우리도 이 사랑의 빚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해야겠습니다.
이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방글라데쉬에서 온 모야 모야 병을 다음주에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시킬 예정이고 간암을 앓고 있는 몽골 교수님도 최선을 다해 치료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엥흐벌드 교수님은 간암으로 인하여 치질도 생겼다고 합니다.
귀한 선교사님들의 생명을 바쳐 이 조국을 새로운 역사로 바꾸어 주었기에 감사 드리며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이 복음을 듣게 하셨고 우리도 진정한 사람을 통해서 전하기를 소원합니다. 유방암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마친 몽골의 사이항 자매는 다른 누구보다도 머리가 빨리 자라서 보는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해 줍니다. 이들 모두가 자국의 복음을 전하는 군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