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오늘 아침에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선생님이 저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권사님의 고난과 수고를 읽고 복음을 위해서 39대씩 5번 맞고 태장을 3번 당하고 돌로 맞았던 사도바울의 수고가 생각이 납니다.
사도행전 29장을 쓰고 계시는 권사님을 응원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어제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곰곰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고후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고후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어제는 새벽 6 시에 출발을 해서 청주 교도소를 가서 디모데를 반갑게 면회를 하고 출발해서 광주 교도소를 가는데 고속도로 중간에서 선교회 봉고차가 시동이 꺼졌습니다. 지난번에 한번은 역시 갑자기 고장이 나서 그날 견인차를 쭈그리고 끼어 타고 다음 휴게소까지 가서 황목사님이 태워준 차를 타고 교도소 면회를 간 적 이 있는데 어제는 갓길에 차를 최집사님이 세워 놓고 견인차가 오기를 1 시간 반을 기다렸습니다. 면회시간은 우리 마음대로 조절을 할 수가 없어서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운전에 노련한 최집사님은 갓길에서 차를 세워놓고 혹시 질주하는 차가 들이박으면 대형 사고가 난다고 뒤에 문을 열어서 올려 놓고 본인이 길 밖에 서서 그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전북 삼메 라는 지역이어서 보험회사에 연락을 하고 견인차가 와서 우리 차를 끌고 가서 공업사에 차를 맡기고 우리는 그곳에서 렌터카를 빌려 타고 기다리고 있을 요한이를 보러 광주로 달렸습니다.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어제는 요한이에게 자매결연으로 작은 예배 실에서 1 시간이 주어지는 특별한 날인데 우리 같이 간 일생 5 명이 1 시간 반을 기다리는 바람에 점심을 모두 건너 띠고 오직 사랑하는 두 아들 디모데와 요한이에게만 집중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접견 약속 시간에 갈수가 있었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특별히 빵이나 떡이나 과일을 가지고 가서 먹을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며 요한이는 우리가 만났을 때 2 시인데 점심을 안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길에서 서 있고 조마 조마 했던 순간이 다 잊혀졌습니다.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잘 먹는 요한이를 보며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문제는 다시 그 공업사로 왔을 때 차를 고치려면 며칠이 걸리는데 차 수리비가 몇백만원이 나오고 그 차를 그렇게 고쳐서 다시 고장이 안 난다는 보장도 없기에 폐차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삼메에서 전주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일산으로 오는 마지막 고속버스를 타고 오게 되었는데 집에 도착하니 밤 12 시가 되었습니다. 집에서 걱정을 할까봐 차고장 이야기는 않하고 좀 늦게 되었다는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집에 도착한 다음에 남편에게 상황을 이야기 해주면서 그래도 감사의 조건을 생각하며 웃으면서 감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도 바울은 강의 위험을 당했는데 우리는 차의 위험을 몇 번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겨울에 그런 경험을 처음 했는데 염산이 녹지 않고 덩어리가 되어서 우리가 지나가려는 그 순간에 튀어 나오니 우리가 탄 차가 춤을 추듯이 길의 양쪽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보통 때 차가 많이 다니는 그 길이 그날따라 하나님 은혜로 한대로 지나지 않아서 감사하게도 대형 사고를 우리가 낼뻔 했습니다.
한번은 청원에 말씀을 전하러 가서 새벽 6 시에 출발을 했는데 앞에 봉고차를 올라타면서 뒤에서 내가 동시에 타는 것을 순간 잊어버리고 앞에 탄 분이 앞문을 쾅 닫아서 사고가 났습니다. 나는차를 올라타면서 차 중간을 붙들었는데 그분은 못보고 문을 닫은 것입니다. 나의 네 손가락이 차문에 끼어서 상황은 부러질 상황인데 그때도 하나님의 은혜로 예정대로 예배 시간을 맞추어서 가서 예배를 다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가끔 그때의 상황을 기억하면 오른손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느껴집니다. 그날 그렇게 손가락이 부러졌으면 지금 이 시간에도 이런 글을 쓸수도 없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날 손가락 네 개가 너무 아팠는데 응급실 갈 생각않하고 예배를 드리러 가면서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네 손가락을 지켜주셨습니다.
어제도 그런 상황에서 최집사님이 처리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 수준이 다른 것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위치가 어디인지 도로공사에 전화를 해도 정확하게 설명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옆에 전봇대에 번호가 있는 것을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위험 신호가 왔을 때도 “차가 이상하네요”라고 우리를 겁먹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침착하게 갓길로 세우셨고 처리하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각자도 인생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갈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가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는 고백을 할수 있는 믿음은 전혀 다른 차원의 믿음인 것을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밤에 12 시에 집에 들어와서 장시간을 우리 5 명은 다녀왔지만 무사히 디모데와 요한이를 면회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우리가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온 것도 감사하고 고속버스에 좌석이 남아 있는 마지막 차가 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여러가지 감사를 드리면서 하루를 마칠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정신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아침도 준비해간 음식으로 차 안에서 먹었고 점심겸 저녁을 한끼 식당에서 먹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하며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