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살리시는 복음의 능력-전도가이드(3)”
딤전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다른 사람을 전도하기 전에 과연 우리 가족은 모두 복음화 되었으며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가장 행복하게 일순위로 삶을 살고 있는가? 가족 전도에 관하여 점검을 해보겠습니다.
두분 아주 유명한 목사님의 자녀들이 책에 자세히 자기 가족에 관하여 특히 아버지에 관하여 글을 썼습니다. 한 가족은 아버지는 기독교 신앙교육의 모델로 아버지께 감사하고 이 자녀들은 의사, 목사 그리고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구정에는 다 같이 아버지의 뜻을 기리면서 인도에 선교를 갑니다. 목회자는 전도를 하고 그 옆에서 의사들은 치료를 해주면서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영파선교회라는 이름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은혜의 가문 세우기” 라는 책에서 부모님은 이 자녀들에게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들로 등장을 하며 자신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보아온 신앙과 모든 것을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박용묵목사님은 정말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주신 모델의 목사님이십니다.
다른 한 가문도 유명한 목사님인데 역시 자녀가 책을 써서 아버지가 전혀 자녀 사랑을 하지 않으므로 믿음을 떠난 형제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한국 교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는 책을 썼습니다. 너무나 놀라면서 읽은 책이었고 이 책으로 말미암아 많은 논란이 생긴 것이 인터넷에 써 있는것을 보았습니다.
“은혜의 가문 세우기”에 복음을 자손에게 잘 전한 목사님은 십계명중에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자녀들을 존중하면서 사랑을 잘 보이셨고 자녀들이 믿음에서 다 떠난 목사님은 “하나님 사랑”은 열심히 했는데 가족을 전혀 돌보지 못해서 “이웃 사랑”에 실패를 한 것입니다.
물론 두 가문다 어릴 때는 교회를 당연히 다녔습니다. 오늘 교회에 의자에 예배에 참석했다고 우리는 가족 전도를 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크리스천 부모를 따라 자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주일에는 교회를 가야 되고 예배를 참석하게 되다가 사춘기가 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일대 일의 인격적인 주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고 교회에 가지도 않고 강요하지 말라는 태도로 변하는 것을 봅니다. 그럴 때 믿음을 중요시 여기는 부모에게는 큰 근심이 됩니다.
“은혜의 가문 세우기”책에서 나오는 박용묵목사님은 저자의 형이 입교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자녀를 꾸지람 하지 않고 스스로 결단하기 까지 몇 년을 기다린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목사님으로써 쉽지 않은 일인데 참 지혜로우신 아버지이고 인격자 목사님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릴 때 유아세례는 부모의 자유의지로 받지만 사춘기 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받지 않는다고 할 때 억지로 받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분은 그후 아주 인격적인 의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자녀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반복하지만 부모 자식간에 관계가 나빠지면 어떤 교육도 좋은 결과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설사 당시에 하나님을 의심하고 성경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의 간절한 중보기도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 자식간에 사이가 나쁜 경우에 엄마가 싫고, 아버지가 싫은데 바로 그 싫은 엄마가, 아버지가 예수를 열심히 믿는 경우 그 싫은 부모 때문에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반대로 부모와 사이가 좋으면 설사 사춘기 때 그렇게 의심하다가도 예수로 인하여 행복해 보이는 부모와 같이 되고 싶은 마음이 신앙의 길로 오게 합니다.
선교현장의 일 번지도 우리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끔찍한 범죄를 일으킴 외국의 흉악범들도 그 얼굴이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변하게 된 것이 거이다가 어릴 때 가정에서 온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대서 기인한 것을 그들의 배경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대할 때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막상 가족끼리는 편하게 아무 말이나 예의를 갖추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특히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가족을 등한시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가족끼리 사랑하고 존중하며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은 얼굴빛이 아주 밝습니다. 반대로 끊임없이 무시당하는 말을 듣거나 욕을 주고받을 때는 서로가 얼굴이 일그러져 가고 병이 나고 세상에 나가서도 실패를 맛보게 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젊은 나이 때부터 아는 부부가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여 저희 부부가 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젊었을 때 그 부인은 예쁘게 생긴 편이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그의 모습은 아주 일그러진 할머니 모습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길에서 보면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부인은 항상 볼 때 마다 남편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언어를 노상 사용하였는데 우리 앞에서도 여전히 그렇게 하였습니다. 우리 앞에서도 그럴 때 우리가 없을 때는 어떤 언어를 쓰고 있을지 상상이 갔습니다.
우리는 말을 그렇게 쓰는데 왜 병이 나냐 라고 반문하겠지만 그 남편은 한쪽 눈은 보이지 않고 신장도 나쁘고 폐렴도 걸려서 두 달이나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간호한다고 옆에 있지만 쉬지 않고 뱉는 언어는 오히려 병을 악화 시킬 것 같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절대적인 것입니다.
늘 야단만 맞고 욕만 듣고 자라는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스스로 못하는 성인으로 자라서 그 부모가 심은 대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잠1:31]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그렇게 키운 것이 자신의 심은 대로 된 것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마7: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와 같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물론 그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것은 엄마에게 전혀 재미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대화를 나누어 버릇하는 아이는 커서도 자연스럽게 엄마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어릴 때 대화를 해 주지 않다가 사춘기가 되면 엄마 아빠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입을 다물고 저항합니다.
신혼때 시시콜콜한 모든 이야기를 주고받던 부부가 어느 날 동상이몽을 하고 있어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고민이 있는지를 모르고 대화라는 게 욕하는 것이 대화라면 자녀들은 결혼이라는 것에 아주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어릴 때 그 부모가 예수를 믿는다고 교회를 같이 갈수는 있어도 그 부모가 믿는 하나님이 절실하게 자녀의 눈에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중진 역할을 하는 가정의 자녀가 신앙이 좋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