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 빅 (Think Big) – 벤 카슨”(4)
“하나님,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나는 넘치는 샘물앞에 놓여 있는 빈 항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채워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실제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이자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벤 카슨의 엄마 소냐 카슨은 이렇게 하나님게 모든 것을 맡기고 어떤 허드레 일을 해도 최선을 다하면서 자녀들에게도 동기를 부여하는 슬기로운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내내, 나는 두개 혹은 세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정부 보조를 받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어머니들이 노력하지 않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엄마가 먼저 최선을 다하고 정부보조보다는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두 아들을 그렇게 다른 아들로 만들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다음 이야기는 이런 경우에 우리 자녀가 이렇게 요청을 하면 어떻게 할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비교가 될 것입니다. 그냥 무조건 야단을 치거나 아니면 무조건 들어주는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어머니의 통찰력에 대한 또 다른 예가 있다. 그것은 어떤 일의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고1 때, 나는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려 있어서 학업 성적이 거의 한학기 내내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또래 집단의 아이들이 입는 종류의 옷을 입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인기 있는 스타일은 이탈리아 풍의 옷이나 가죽옷이었는데, 그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간청했던 것이 기억난다. “엄마 부탁이에요. 제발 그런 옷 한 벌만 사주세요. 친구들하고 다른 복장을 하기가 싫어요” “그들이 정말 네 친구들이라면 네가 옷을 어떻게 입든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되진 않아.” “하지만 엄마, 모두들 어떤 웃을 입는지 엄마도 아시잖아요.”나는 나보다도 더 가난한 집 아이들 중 네다섯 명의 이름을 대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럴 돈이 없단다.” “하지만 전 꼭 이탈리아 풍의 니트나 셔츠가 있어야만 해요. 안 입고 있는 애들이 없단 말이에요.”
내가 그렇게 유행하는 옷에 집착해 있는 동안 나의 성적은 A학점에서 B학점으로 곤두박질했고, 빠르게 C학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학교 수업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나의 주요 관심사는 바로 그 옷이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농구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또다시 어머니께 간청했다. “엄마, 이탈리아 풍 니트를 딱 한 벌만 사주세요” 어머니는 길게 한숨을 쉬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벤, 네게 할말이 있다. 나는 생활비 운영을 네게 맡기려고 한다. 네가 그것으로 식비는 물론 다른 모든 청구서를 지급하도록 해라. 그리고 남은 금액은 네가 가져도 좋다. 모든 돈은 현금으로 집에 가져와서 너에게 넘겨 주겠다.” “좋아요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제일 먼저 청구서부터 지급해야 한다. 내가 가져다 주는 모든 돈을 계산해 보고 나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해 금액을 할당해 두어라. 탁자 위 여기에 그것들을 정리해 두고 해당 금액을 표시해라, 알아들었니?”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전 지금 준비가 되어 있어요”
“월요일 아침부터 시작해라 먼저 모든 청구서부터 지급하고 남은 금액은 얼마든지 내가 가져도 좋다는 점을 기억해라. 그리고 시내에 가서 네가 원하는 모든 이탈리아 풍 니트나 셔츠를 사도 된다” 결국 내가 이겼다. 이젠 더 이상 이탈리아 풍 니트와 가족 재킷을 사달라고 더 졸라대거나 군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직접 그것을 살수 있게 되었다.
월요일 아침, 어머니는 약속하신 대로 전 주간에 벌어온 모든 돈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리고 식품, 자동차 연로 그리고 각종 필요한 청구서들에 대한 비용 명단을 나에게 건네 주셨다. 나는 열심히 돈을 할당해 보았다. 물론 돈은 순식간에 바닥이 났고, 옷을 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한 푼도 남지 않아요.”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말 낙담이 되었다. 모든 돈을 다 사용하고도 점심과 전화 비를 낼 돈이 부족했다. “그래, 아들아. 너도 알다시피 난 한 푼도 뒤로 빼놓지 않았다. 이것이 매주 내가 벌어오는 금액이란다.” “저도 알아요” 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처음으로 이탈리아 풍 니트를 사달라고 졸랐던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렇지만….이 일을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내가 물었다. “단지 하나님의 도움 밖에는 없단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이 일로 인해 나는 하나의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내 생에 처음으로 어머니께서 처한 곤경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수입과 지출 금액을 맞추어 보아도 그 동안 어머니께서 형과 나를 길러오신 것이 놀랍기만 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우리의 이웃들이 재정적으로 넉넉한 가정인 것으로 확신할 만큼 잘 운영해 오셨던 것이다.
“엄마는 재졍관리의 천재예요!”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과 함께라면 분명 그렇지!” 어머니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는 이탈리아 풍의 옷을 사달라고 어머니에게 조르지 않았다. 이 통찰력으로 인해 나는 훨씬 더 깊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 적은 돈으로 수 많은 일들을 행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머니가 내게 말씀 하셨던 기억 가능한 다른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적은 생활비를 가지고서도 당신이 처헌 일들을 처리해 낼 수 있었다면 아마 나에게 말씀하셨던 다른 어떤 것들도 역시 사실일 것이었다.
이러한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어머니께서 일터에서의 관찰과 경험을 통해 통찰력을 얻으셨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어머니는 그러한 통찰력을 적용 할 때마다 그것은 곧 어머니의 지혜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지혜를 통해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도 있었던 또 다른 재난들에서 피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