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위해 멈춘 사람
소록도를 여러번 깄다 오면서 여수 애양원에는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합니다. 소록도에서 하루밤을 자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우리는 여수로 달렸습니다.. 한국의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을 가진 손 목사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을 가볼수 있다는 기대를 전혀 하지 못했는데 새벽 예배를 마치고 그곳으로 향할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수 애양원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으로 유명합니다. 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잃고 장례식에 그분의 감사기도를 드렸는데 지금도 그 내용을 묵상하면 심금을 울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할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게 감사합니다.
셋째: 3 남 3 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남, 차남을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합니다.
냇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와식종신(제명에 죽는 것)은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을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내 두아들 순교의 열매로 말미암아 무수한 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홉째: 이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가지 진리와 신애(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쁨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1948 년 10 월 27 일 아침 고국 남쪽 여수에 자리잡은 애양원교회 총살당한 두 아들 장례메배는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의 이 감사로 눈물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에서 은혜를 받아 자신의 이름을 아예 손양원으로 바꾸셨는데 그분이 그런 훌륭한 목사님이 되도록 애양원을 설립하게 된 배경은 사랑을 위해 멈춘 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이면서 의사인 오원 선교사님은 한국인을 사랑으로 섬기다가 괴질에 걸려 갑자기 등에 열이 나면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교인들이 오원 선교사님을 지게에 지고 광주까지 이동해 왔습니다. 이때 배우지 선교사님은 목포에 있는 포사이드 의료 선교사님에게 연락을 취하여 빨리 와서 오원 선교사님을 치료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포사이드 선교사님은 곧 배편을 이용하여 목포에서 영산강을 거슬러서 영산포까지 이르러 다시 말을 타고 광주로 향하던 차에 나주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견하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간 선교사님은 그 여자가 한센병환자인 것을 알고 그 여자를 태우고 자신은 내려서 마부와 나란히 걸러갔습니다. 포사이드 선교사님은 그 환자를 광주 진료소 방한칸을 내어 그곳에서 쉬게 하였는데 다른 환자들이 한센병에 걸린 환자와 같이 있을 수 없다고 항의하자 어느 가마를 굽는 굴 한 칸을 깨끗이 정리하여 그 여자의 쉼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한센병환자를 위한 애양원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오원선교사님은 그만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런 분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수 많은 사람을 살리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간분들 입니다.
산돌의 잠든 자리
그의 생일은 중생한 그날이었고
주소는 주님의 따뜻한 품속이었다.
그는 기도로 호흡을 하시고
성경으로 양식을 삼으시며
전도로 일을 삼으셨다
그의 신앙은 십자가와 천국이었고
생활은 희생의 재물이었다.
유유하게 흘러오는 구름타시고
양양한 남쪽바다 물결을 건너
천천만 천군천사 거느리시고
어린양 우리주님 다시 오시는
천사 장 나팔소리 들릴 때가지
옹매간 잊지 못할 애양원동료
앞세운 두 아들과 나란히 누워
고요히 잠드시라 편히 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