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양육법”
예수님의 제자 양육은 어떤 제자 양육에 관한 책보다도 가장 효과적이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습입니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거 동락하면서 예수님의 일거 수 일 수족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이론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고 누가 보아도 전혀 다른 모습의 기도를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사람을 키우고 세운다고 하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눅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섬김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탁상에서 가르치신 것이 아니고 직접 행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렇게 우리와 전혀 다른 삶을 보여주시면서 제자 양육을 한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포기 하지 않으셨고 부활 후 그들을 찾아가서 책망을 하고 실망을 했다고 하시는 대신 숯불 생선구이를 해 주시고 그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이 부분도 너무나 감동 깊은 가르침이십니다.
캄보디아에 도착한 하이소밧이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어제 잘 도착했습니다. 지금 가족이랑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닉닉이 어제 잠을 못 잤데요. 저를 많이 보고 싶어서 잠을 못 잤다고 해요. 그리고 저한테 그런 말을 해요. “아빠 이제 멀리 안 가는 거지요?” 참 감사하는 것이 자녀들이 저를 다 좋아해요. 에스더가 태어났을 때 에스더는 캄보디아에 있고 나는 한국에 있었는데 원래 남을 잘 따르지 못 하는 에스더가 저를 그냥 잘 따라 와요. 우리 아내와 아이들을 볼 때 제가 신앙 생활을 잘 해야 한다고 많이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제가 잘 못 한다면 우리 가족이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망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가정 예배를 시작하는 걸로 정했습니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기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 홀리 가족이 가까이 있기에 가족을 의지하는데 이제 멀리 계시는데 좀 더 강한 마음으로 해야 우리 가족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이 바로 신앙으로 서야 캄보디아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홀리 가족들이 기도 많이 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중국에 이봉선전도사님은 고아출신이기에 고아들을 돌보는 지인이 병원에 입원하자 함께 나눔을 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을 성경말씀과 홀리네이션스에서 보고 할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연길에서도 몇 명의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또 나눔을 하는 손길이 아름다웠습니다.
해외에서 다들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감당하는 행복동의 가족들은 네팔에 지진이 나서 슈랜드라 목사님 교회의 교인들이 집을 잃고 어려울 때 우리 모두 도웁시다 라고 한적도 없는데 뉴스를 보고 너도 나도 함께 도와서 그곳을 회복시킨 순종은 늘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외국인 학생들을 키울 때 어느 개인이 하는 것보다 우리 행복동 가족들은 다 같이 사랑해주고 격려하고 함께 말씀을 읽는 것과 기도하면서 주님나라 확장에 협력하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나 큰 힘이 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