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신 이기열 선교사님”
우리가 중국에 오면 최화전도사님은 그곳으로 우리를 만나러 오겠다고 하더니 우리는 2 시간 걸려서 도착했는데 해주에서 심천까지 2 시간 버스를 타고 그곳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4 시간 반을 타고 우리를 만나서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떠난 지 7 년 만에 얼굴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 귀한 만남을 다시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최화전도사님은 신학대학원을 우리가 후원했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후원하고 집에서 데려다가 공부를 할수 있도록 해 주신분이 이기열선교사님이십니다“권사님, 내 인생에서 이기열선교사님과의 만남과 홀리의 만남은 정말 다른 인생을 만들어주었어요. 만약 이기열선교사님이 나를 고등학교부터 집으로 데려다가 공부를 안 시켜 주셨다면 지금쯤 나도 한국에 공장이나, 식당, 병간호인으로 일하는 다른 조선족처럼 살고 있었을것이예요.” 이 말이 이번에 너무나 깊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최전도사님은 아주 똑똑해서 고등학교때 수석도 했고 연변 과기대도 우수한 학교이고 신대원도 석사로 잘 졸업을 했는데 만약 그렇게 공부를 할 기회가 안 주어졌다면 그 똑똑함을 인정 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도사님은 늘 이런 간증을 하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이기열선교사님과 같이 살고 대학교때는 기숙사에 있다가 주말이면 집처럼 선교사님에게 갔었는데 중국인 장애인을 집으로 데려다가 대소변을 못 가리는 장애를 마다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선교사님은 오십대 초반에 여자로서 싱글이면서 중국선교를 떠나셔서 지금 17 년째 하고 계시는분이십니다.
보통 말과 혀로만 전도를 하여서 전도가 열매를 못 맺는데 선교사님은 삶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 선교사님이 최화전도사님을 큰 교회에서 생활비는 후원이 안되어서 힘이 들어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우리에게 부탁해 왔을 때 만나 본적도 없고 그분이 어떤분인지도 모르는데 한번 전화를 받고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게 김현길목사님부부도 이기열선교사님의 요청으로 우리 학생이 된 것입니다. 이선교사님이 신실하신분이라 성령님이 감동을 주신것을 느낍니다.
어느새 78 세가 된 전도사님은 지금 허리를 다치셔서 수술을 받고 허리도 다리도 잘 못쓰시면서도 아직도 자신이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중국에서 오가는 것보다 배를 타면 더 많이 전도를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선교사님이 마치 즐거운 여행을 자랑하듯이 하는 이야기가 감동의 미소를 짓게 하곤 했습니다. 참으로 이런 하나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늘 성경을 누구에게서 배웠느냐는 중요한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최화전도사님은 이곳에서 공부도 하고 결혼식도 시켜 주었는데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자신은 선교회에서 후원하는 후원비를 받지 않고 사역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그냥 둔 것이 아니고 한국인 장로님이 비비안리 여자 내의를 하면서 최화전도사님에게 중국에서 그것을 할 사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하여서 남편을 소개해서 남편은 그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남편은 그렇게 해서 중국에 아파트도 마련하고 친정부모님도 모시며 살면서 4 살된 딸 혜윤이도 주셨습니다. 이번에 전도사님이 그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중국으로 돌아갈 때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많은것으로 채워주셨어요. 그리고 늘 몸이 아프다고 병원을 다니시던 친정 어머니도 외손녀와 같이 살면서 강건해 졌어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네팔에 선교 여행 갔을 때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그곳은 내란이 일어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일체 도로에 교통수단이 없는데 계엄령이 선포되어 슈랜드라 목사님이 그것을 놓고 기도 부탁을 했는데 바로 전날 풀려서 우리가 비행기에서 내려서 몇 시간을 가방을 끌고 걸어가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슈랜드라목사님은 방학 때 카투만두 공항에 도착해서 가끔 그런 일을 당해서 몇 시간을 걸어서 집에 도착한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몽골에 갔을 때도 전혀 비가 오지 않고 다니는데 전혀 불편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중국에 바로 전날까지 비가 내렸다고 하는데 우리가 머무는 동안 전혀 비가 오지 않아 우리가 다니는데 비를 맞지 않고 좋은 일기 속에서 다닐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몽골에 갔을 때 우리가 밤 늦은 시간에 도착을 하였는데 그때 잊을수 없었던 일은 동대문 시장에 물건을 사러 왔다가 길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진 깐숙씨를 이대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해 주었는데 깐숙씨가 15 인승 차를 몰고 나왔고 한국에서 있던 많은 몽골 사람들이 공항에 많이 나왔습니다. 그때도 천국에 가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깐숙씨는 치료를 우리가 해주어도 잠시 한국 방문을 한 경우이기에 전혀 우리 선교회 예배에 참석을 하는 그런 일은 없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와 같이 공항에 나왔고 우리가 몽골에 머무는 동안 내내 동행을 해주며 차를 운행 해주었던 추억은 행복한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