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년 대부흥은 진정한 회개로부터”
우리는 부흥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숫자가 많이 불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진정한 부흥은 참된 회개로부터 시작된 것을 우리는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회개가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설사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을 이 기록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이 대부흥운동의 이야기를 자세히 읽어본다면 만약 하디 선교사가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는 선교사로서 실패과 고통만 안고 실패자의 삶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마귀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o하디 선교사의 회개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를 중심으로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 부흥의 불길이 전국을 휩쓸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회개의 역사가 있었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일과 병 고침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이 힘차게 증거 되기 시작했고 가장 완악한 사람들도 통회하며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너무나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시기를 "평양 대부흥운동"이라고 이름 했습니다. 수많은 도둑과 깡패들이 개과천선하였고 도박꾼이나 알코올 중독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바람 피우며 돌아다니던 사람들도 자기 죄를 고백하고 가정을 회복하였고 남의 돈을 떼먹었던 사람들이 그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평양 대부흥운동"은 세계교회사에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평양 대부흥운동?은 그보다 4년 전에 일어났던 "1903년 원산 대부흥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원산 대부흥운동의 주역은 로버트 알렉산드 하디(Robert Alexander Hardie: 1865-1949) 선교사입니다. 그는 캐나다 출신으로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0년 9월 아내와 함께 남감리교 의료선교사로 우리나라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보건 위생 등 열악한 환경으로 1893년 그의 큰딸이 출생했지만 그 다음날 사망했고 작은 딸 역시 1903년에 출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1892년경부터 원산과 강원도 통천 등지에서 개척선교사로 수년간 일했지만 별로 열매를 거두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역에 실패했다는 절망감에 그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기도와 성경공부를 위한 어떤 모임에 참석하였다가 수많은 동료선교사들과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실패와 실패의 원인을 고백했습니다. 그는 서양선교사로서 자기 안에 있던 민족적 우월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술과 능력을 의지한 자만심, 한국인을 미개하고 무식한 민족으로 생각했던 교만 등을 공개적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를 본 여러 한국 사람들과 서양선교사들이 뒤를 이어 자신의 부끄러운 허물과 죄를 고백하고 과거의 삶을 청산하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원산뿐만 아니라 개성과 서울, 평양 등지에서 각종 기도모임과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차례로 일어나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했지만 기도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한꺼번에 기도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온 세계에 한국식(Korean style) 기도로 알려진 통성기도의 시작입니다. 1903년 원산 대부흥운동 이후 ?평양 대부흥운동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성장의 가장 중요한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원산 부흥운동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라 할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기독교는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한다면 제2의 평양부흥 운동 혹은 원산부흥운동은 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나 자신의 회개가 절대 필요한 시점이라 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개정 고후 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