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요, 아프리카 (김동해 저서)를 읽고”
아래 글은 책에서 일부를 그대로 퍼온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책을 보시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이 어떤것인지를 배우게 될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아프리카를 달려가며 우리 일행에게 주시는 말씀이었다. “아프리카는 위험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갈수 있는 길이 없다”며 자꾸 나를 주저 앉히려 했다. 다행이 하나님께서 내 약한 마음을 꽉 잡아 주셨다. 그 믿음에 의지해 떠났다. 길이 있어서 가는게 아니었다. 보이는 길은 누구나 간다. 하나님은 홍해나 사막같이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광야 길로 우리를 이끄신다. 믿음으로만 볼수 있는 비전루트다. 주님이 불과 구름 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을 알고 있었다.
수술 후에 “눈이 보인다”라고 외치며 춤을 추고 노래하고, 우리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환자들과 가족들의 모습 때문에 자꾸 활동하는 나라가 늘어만 갔다. 세계 모두 35 개국을 다니며 1 만명 가까운 환자들을 빛을 보게 하였다. 지구상에는 2 억 8,500 만명의 시각 장애인이 있는데 그중 90% 가 저개발국 특히 아프리카에 있다. 다시 시력을 회복한 그들은 “오늘이 내 생일이예요. 나는 다시 태어났어요. 이제 하늘의 별도 내 가족도 볼수 있어요” 라고 소리치는데 두 달동안 아홉나라를 오토바이로 7,362 키로를 달려가며 그들을 경험하고 아프리카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선교나 봉사는 도우러 가는것이지 우리를 자랑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다. 나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예배당 안에만 머물면 안되는것이다. 예배당을 나가는 순간,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시고 이제 거둘때가 된 우리의 진짜 일터가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 해외에 나가 수술을 할 때는 정해진 비용 안에서 많은 환자를 고쳐 주려고 하니 얼마라도 싼 소모품등을 써야 했다. 그런데 막상 현지인을 수술하면서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가장 좋은 것으로 하자”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비록 적은 환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더라고 비싼 인공수정체와 의약품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 명을 고치더라고 완벽하게 해 주는 게 맞는 일이다. 이웃에게 베풀 때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처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인턴을 마치고 음성 꽃 동네 병원에서 공보위로 일할때도 좋은 선배 의사들을 만 났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 방사선의사 개척자이자 경희대 총장으로 지낸 안치열 고수님이 있다. “저는 평생 ‘장’자리만 다 차지한 불행한 사람입니다. 제게 ‘장’ 자리가 아닌 아무 자리나 하나 주시면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쁘게 봉사하겠습니다.” 그분이 정년퇴직을 하고 꽃동네 병원으로 자원하여 오면서 한 말씀이다.
안 교수님은 총장 재임 시절에 심장마비로 죽음을 체험했다. 응급실로 실려가 죽어 있는 자신의 육체에 의사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것을 공중에서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밝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말씀을 듣고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돈에 욕심이 없고, 겸손하고, 늘 공부를 하는 교수님이었다. 그는 꽃동네 병원에서 10 년을 일하고 천국으로 가셨다.
2008 년 말라위에 왔을 때 힘들었던 시간, 그때는 수술할 병원에 장비도 없었고, 도와줄 사람도 부족했다. 수술도 혼자서 해야 했다. 캠프 오기 전부터 목 디스크가 생겨 아프고 팔까지 저릿저릿한데 환자들은 몰려 들었다. 정말 울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나? 그냥 편히 살아도 되는데…” 그때였다. 수술실 안에 흐르던 찬양 가사가 갑자기 뚜렷하게 들려왔다.
어느새 지금 여기 서 있네
생각조차 못했던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
감사하기만 한걸
함부영이 부른 “길”이라는 복음성가였다. 내가 어찌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조차 못하고 들어본 적도 없던 말라위까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다시 노래 가사가 들려왔다. “조금씩 보인 그 실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었지.” 그랬다. 가난해서 의대생 6 년동안 과외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며 살던 내가 어떻게 파키스탄까지 가서 무료 수술 캠프를 시작하고 수 많은 나라에서 15 년동안 이런 일을 할수 있었을까? 한 걸음 인도하지 않으셨다면 절대로 할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지는 음을 하나하나가 영혼 깊이 파고 들었다.
인생의 끝에
내 삶을 반겨 줄 이
기다리고 있으니
내게 주어진 길을 걸으리
담담하게 이 길에 나서리
쉬운 길을 찾았던 지난 날과
아쉬움은 소망으로 덮고
주어지는 인생의 길 위에
후회 없이 내 삶을 그리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대도
난 결코 포기 할수 없네
“직업에 대한 감사”
오, 하나님
예수님이 목수였음을
베드로가 어부였음을
아브라함이 목자였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정직하게 제 직업에 일하는 것에
시작한 일을 틀림없이 마무리하는 것에
손을 댄 이상 잘 하도록 힘쓰는 것에
자부심을 느기게 하소서
오토바이로 아프리카를 두달을 달리며 시각장애인들에게 수술을 해 주었을 때 고생이 많았지만, 두배로 많은 것을 배웠고, 수십배로 은혜를 체험했고, 수백배로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을 감상했으며 수천 배로 행복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를 들으며 내 인생의 여정을 마치는 날, 나를 기다리고 게실 주님의 따뜻한 환영을 미리 경험하는 듯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수술을 해 주고 빛을 선물 할수 있어서 행복한 당신들의 모습을 볼수 있어서 우리가 더 기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나는 더 이상 두려움의 노예가 아니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찬양을 불렀다. 두려움을 극복하며 어려운 길을 달려와서 그런지 가사가 마음을 울렸다. 이슬람이 아무리 커다란 모스크를 세워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의술을 펼치는 일에는 당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