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소개하신 겸손하신 의사선생님들”
외국인들에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의료 혜택을 주려면 정말 다양한 병들을 앓기 때문에 종합병원외에도 많은
곳을 찾아가게 되고 그 만남의 주선을 우리 주님은 지금까지 놀랍게 해 주셨습니다. 외국인들 일반 건강검진을 해 주는 보건소와 결핵환자에게도 필요한 약품을
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현재는 덕양구 보건소장님인 김안현 소장님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주근로자 사역을 돌아보며”
–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
롬5:5-8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한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저는 현재 고양시 덕양구보건소에서 보건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안현입니다.
김상숙권사님은 17 여년전 이주근로자의 건강검진을 위해 덕양구보건소 진료실에 방문하셔서
처음 알게 되었고 여러 모양으로 지금까지 교제를 해오고 있습니다.
권사님의 믿음과 사랑과 소자들에 대한 섬김은 저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고백처럼 모양조차 내기 어려운
삶입니다. 권사님께서 저에게 한 두 번 삶을 나눠주길 부탁하셨지만 주를 위해 한 일이 너무나도 없고
부끄러움만 가득해서 미뤄오다가 지금껏 영적으로 나눠주신 권사님의 사랑과 마음 한 구석 남아있는 이주근로자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이 느껴져서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려서 살던 시골마을은 모두가 형편이 비슷했고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자녀교육의 목적이었습니다. 의과대학에 진학한 저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기대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개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길 기대했습니다.
반면에 저는 의과대학을 선택했으면서도 구체적인 목표가 없었고 왜 의사가 되려고 했는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삶의 목적과 방향이 없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로마서강해를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제 인생의 의미를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특히 로마서 5장 8절
말씀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셨고 공부와 예배와 관계와 사역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을 싫어했고 부자가 되는 삶을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제가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의사가 되어야 할 이유와 하나님의 나에 대한 관심과 계획을 알게 되었고 젊은 날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과의사가 되어서 의료선교사로서 젊은 날을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내과의사도 되지 못했고 30대의
젊음을 선교사로서 하나님께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30대에 보건소 관리의사가 되어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는 영적으로 둔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항상 저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심을
나중에야 깨닫고 감사를 고백하는 그런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 때는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젊은 날의 저의 기도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려고 길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보건소 관리의사로 근무하면서 보건소 옆에 있는 고양시청 건물을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이 곳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기쁨을 갖게 하셨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하시고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라는 열등의식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 즈음에 보건소에는 이주근로자들의 발길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MF 즈음해서 고양시와 인근 파주시에도 가구공단을 중심으로
많은 이주근로자들이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김상숙권사님을 처음 알게 되었고
교회사역자, 공장사장님 등과 함께 건강문제로 보건소를 찾아오는 이주근로자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때마침 제가 출석하는 교회 주보에도 이주근로자들을 위한 의료봉사자를 찾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삼십대 초반이었습니다. 이상하리만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임을 느꼈습니다.
의과대학생 시절에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의사들보다 공부도 많이 하지 않았고 경험도 많지 않아 봉사에 자원하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줄 것도 없는데, 많이 가지지도 않았는데...”
그 때 주님께서는 저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부스러기와 같은 너의 믿음과 하찮은 재능일지라도 내가 기뻐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부족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함께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불안정했던 30대의 시간에 가장 성령충만
했었고 기쁨으로 살았던 이유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 시대 이 땅의 소자였던 이주근로자 사역가운데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있는 사역가운데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음 사역은 가나와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형제, 자매들을 위한
내과진료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분들을 다른 병원으로 연계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때로 그들이 일하는
곳과 숙소를 방문해서 진료를 했는데 추운 겨울 컨테이너에서 잠을 자는 것과 추운 겨울 양말도 없이 여름옷을 입고 공장숙소에서 생활하는 이주근로자들을
보면서 공장과 숙소를 본격적으로 방문해서 진료하기 시작했습니다.
덕이동 가구공단에서 만났던 필리핀 형제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로
점심시간이나 공장일이 끝난 저녁에 공장과 숙소를 방문했었는데 어느 날 점심시간 혼자만 떨어져서 소망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는 마약으로 가정이 깨지고 이혼 후 딸을 여동생에게 맡긴 후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마치 그때까지도
마약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일이 끝난 후 공장 옆 숙소인 컨테이너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큰 눈에는 곧 눈물이 흐를 것처럼 슬픔으로 가득했고 힘든 일에 지쳐있었습니다.
한동안 컨테이너를 방문했습니다. 교회로 인도된 후 매 주일 드리는 예배와 교제가운데 형제는
회복을 경험했고 부활주일에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간증을 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지금 그 형제의 이름도 잊었고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으나 주 안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의 처지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때에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신다는 고백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17년 가까이 하나님께서 홀리네이션스 선교회를 통해서
일하시는 사역들은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20년 동안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와 보건소장으로 맡겨진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건소로 보내주셨기에 김상숙권사님과 같은 신실한 사역자를 만날 수가 있었고 성공한 의사의 길을
가지 못했다는 열등의식 속에 사로잡혀 있던 시기에 이 땅의 소자인 이주근로자들의 연약함을 돌보고 함께 하는 일을 통해 열등의식을 극복하고 청년의
때에 드렸던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며 실수투성이인 저의 삶이지만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임용권자이며 저를 부르셨다는 소명의식과 공무원으로서 하는 일들이 잠시 잠간 나에게 맡겨진 주의 일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선하시다는 믿음입니다.
주 안에 있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과
부르심에 감사 드립시다.
고단하고 외롭고 힘든 나그네의 삶이지만 하나님께서 잠시 잠간 맡긴 것이요,
주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립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