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책에서는 반복헤서 나오는 글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절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역사하는 기도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영적 생활의 참다운 성장, 이를테면 시험에서의 승리, 역경과 위험 속에서도 확신과 평안함, 엄청난 실망과 슬픔 앞에서의 영혼의 평온함,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는 하나님의 보물창고 문을 여는 열쇠에 대해서 그렇게 무지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얼마나 이상히 여기실까? 우리 중에 역사하는 기도를 아는 자가 너무나도 적으니 말이다. 저마다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진실로 기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간구의 의미를 거의 모르고 있다. 당신은 정말로 기도가 능력이라는 것을 믿는가?”
이 내용을 반복 읽으면서 많은 분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동일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복해서 우리에게 기도를 보여주시고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기도의 능력을 보여주셨건만 기도에 대해 거의 무지하여 얼마나 응답을 해 주시는지를 체험을 하지 못합니다.
여러교회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점을 이야기 하면 정말 평소에 말씀과 참된 신앙으로 무장된 교회는 기도 자체가 그분들의 분위기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로 충만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행복동의 기도회에서 넘치는 응답을 우리 모두 보고 기뻐하고 “오늘도 주님이 하셨어요”라고 고백하는 기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이 내 안에 거하지 않는한 우리의 기도는 허공을 치는 기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국교회에 기도 하는 모습중에 “주여” 삼창을 처음 세번 크게 하고 금방 조용해 지던지 아니면 잠시 하다가 꺼져버립니다. 행복동 기도는 처음 조용히 묵상으로 시작하다가 더 깊이 주님의 임재안으로 들어가서 기도하기에 점점 더 깊어집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주님의 존전앞에서 한가지만 고백합니다.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예수를 닮기 원함이라” 이 한가지 기도를 하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약속을 넘치도록 보게 됩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기를 원하고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 우리의 구하는 것을 더하신다는 약속은 언제나 신실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다른 것을 일일이 아버지가 말뀌 못알아듣는 것처럼 그 필요한것만 반복하며 듣기에도 피곤한 말만 떠들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의 아버지앞에 앉아 있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무언가 빚을 진분이 아니십니다. 아버지께서 부드럽게 타이르시는 성경에 말씀을 한번 묵상해보시죠.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행복동에서는 열방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서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했습니다. 그러기에 다달이 지출은 더 늘어났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키우는 학생 외에도 해외에 자국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을 지원하고 다달이 늘어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달에도 새들의 행진을 하게 하셔서 필요한 모든 지출이 마치 퍼즐이 맞는 것 같이 맞추어졌습니다. 환자들 더 많이 돕기를 원하고 해외에 학비를 보내는 과정에서도 하루 하루 새들을 통해서 공급하시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약속은 너무나 신실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것을 주세요 저것을 주세요” 라고 때쓰는것보다는 예수님 닮기 원하는 기도를 하면 우리의 기도 제목도 전혀 다른 것을 간구하게 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간구할 때 기도 응답을 넘치게 하시는 것을 바라봅니다. 그저 감사 또 감사드릴 것 외에 다른 언어가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피곤하지 않은 이유는 아버지께서 직접 행하시는 것을 늘 뵈옵고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화니 크로스비가 “주의 얼굴을 항상 뵈오니 더욱 친근합니다” 라고 찬송시를 쓴 것을 우리도 공감하며 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