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간증은 어릴 때 친어머니, 새어머니 두분 돌아가사고 세번깨 새어머니밑에서 자라면서 한센병을 앓고 하나님을 만나서 살게된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하나님 은혜로 감사로 덤으로 살아온 사람”
o무지와 편견
나는 1940 년 1 월 30 일 대전시 사정동 시골 농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누나와 나를 낳고 내가 네살 때 24 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엄마 얼굴도 모르고 자라가는중에 새어머니를 맞았고 8 년 후 또 새 어머니 마저 세상을 떠나 세번째 새어머니와 증조부슬하에서 자랐다. 초등학교도 입학하기전 동네 개구쟁이로 소문났던 일곱살인 나에게 한센병이란 고난이 시작되었다. 얼두살때 6.25가 터졌고 그때부터 병세는 악화되어 식구가 알고 동네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아 어찌 이런 일이 우리 집에 일어났단 말인가? 아버지는 탄식하며어찌할 바를 모르고 게셨다. 손과 발이 변형되고 눈썹도 다 빠지고 무릎의 상처는 치료품이 없어 이불솜을 꺼내고 이불천을 찢어 치료품으로 사용하는데, 여름철에는 2~3 일이면 썩는 냄새가 나서 자주 새 솜으로 갈아주고 하다보니 이불 하나가 소모되고 없어졌다. 한번은 상처 붕대를 끌러보니 벌레가 한 주먹이나 나왔다. 병 때문에 몸속에서 나온 줄 알고 깜짝 놀라 땅속에 묻었다. 벌레의 정체는 구더기였다. 냄새가 나니 파리가 알을 낳아 구더기가 뻐가 보일 정도로 살을 파먹고 자랐다. 파리는 무서운 존재였다. 자기 종족을 남기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날아 들고 나는 파리를 잡기 위해 신경을 써도 어느새 파리는 알을 낳고 날아갔다. 참말로 무섭고 미운놈 파리, 내 살을 파 먹은 놈!
절망에서 절망으로 계속 달려가는데 마을에서 사람만 모이면 한센병에 걸린 내 이야기로 여기서 수근, 저기서 수근, 어린 마음이지만 도저히 부끄럽고 기족이 살수 없어 독약을 먹어도 보고 목을 매어도 보았지만 죽은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O쪽 복음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가고 있는 나에게 누나가 쪽 복음서 마가, 요한 복음서를 전해 주었다. 방에서 하는 일이 없으니 밥 먹듯이 복음서를 읽었다. 복음서에는 에수님께서 각종병자를 고쳐주시는 기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고 특별히 한센병자(나병환자)를 고쳐주시는 기적을 보게 되었다.
마8:2-3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한센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두려움과 편견 속에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성경에 68 번이나 기록된 한센병을 고쳐주신 기적의 말씀을 보고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에수님은 내 병도 고쳐줄 것 같은 생각으로 성경을 읽고, 읽는 중에 소망이 생기고 살 수 있다는 용기와 꿈을 꾸게 되었다. 마치 예수님이 활동 하시며 병을 고치시던 그때 그 무리중에 내가 있어 예수님을 보는 것 같고 음성을 듣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O신양생활의 시작
6.25 사변 직후라 먹고 살기가 다들 어려웠다. 한센병 환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집집마다 구걸하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가을철, 환자 한분이 우리 집에서 내가 환자인 것을 알아보고 아버지께 이야기하셨다. “대전 애양원(현재 대전 터미널자리) 에 가면 치료 받을 수 있는데 왜 집에서 병을 키우느냐?” 치료해주는 곳이 있다는 복음 같은 소식을 듣고 우리는 애경원을 알게 되었고 ‘이제 살게 되었구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쁨과 소망이 생겨났다. 큰 어머니 남동생이 도청에 근무하는데 그분 말씀이 도립애경원에 새 집을 건축 중이니까 집을 다 건축하고 나면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내 생각은 하루라도 빨리 애경원에 가야만 살 것 같고 집을 떠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집을 떠나가게 되었다.
레13:45-46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부정해서인지 차도 승차거부, 음식점도 이발소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던 시절 아버지는 집에 올 생각도 편지도 하지 말라 하셨다. 얼마나 병이 무서웠는지, “욥5: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욥기의 말씀처럼 나는 이제 객지에서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 나그네 신세였다. 고난이 유익이 된 것은 소망을 주님께 두었기 때문이리라.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말씀이 꿀 같으며 머릿속에 기억되어 복음 성가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풀아 불어라”를 부르고 또 불렀다.
고향을 떠난지 4 년만에 병은 많이 호전되어 고향을 가게 되었다. 그리운 고향집은 대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산을 넘어 집 뒤 가시나무 울타리 밑에서 누님을 불렀다. 친척되시는 분이 쪽박에 밥을 주어 울타리 밑에서 먹고 차비를 주어서 가지고 왔다. 지금와서 생각하니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불신의 가정에서 한센병을 통하여 불러내시고 큰 복을 주시기 위하여 환난과 고독과 굶주림의 연단후 구원의 복과 주님 일에 쓰임받는 큰 복을 주심을 감사하고 있다.
o내가 어려울 때 고마웠던 분들
치료약으로 태풍자는 효과가 있었으나 약이 DDS로 바뀌면서 부작용으로 치료는 중단되고 병은 다시 악화되기 시작되어 고심 끝에 약이 풍부하고 공부도 할수 있다는 소록도에 가기로 했다. 격리되어 사회 편견 속에 기가 죽고 세상물정을 모르고 내성적인 나에게는 소록도 가는 길이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고생하였다. 소록도 가기전에 서울이나 한번 구경하고 가자 해서 영등포역에 저녁 무렵 내렸으나 길을 몰라서 도로 목포로 가는 완행열차를 탔다. 무임승차하였는데도 검표원이 눈감아 주어 목표에 저녁에 도착하였다. 58 년이나 지난 지금도 그때 그 고마우신 분을 잊을 수가 없다.
해변가로 물어 물러 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여수에 가면 배편이 있다기에 철길따라 여수를 가다 어두워질 무렵, 일로역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선로 복구반 아저씨가 “밤에 어디를 가느냐?” 물었다. “예, 여수까지 갑니다.” 어두우니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해서 일로역 근처 선로 복구반 아저씨 집에 가니 노모가 계셨다. 밥을 차려주면서 잠은 다른 곳에 가서 자라 해서 아저씨가 여인숙에 재워주시고 아침식사 후 여수행 열차를 태워주셨다. 처음 보는 병든 나그네에게 친척보다 친절하게 선생을 베푼 아저씨를 잊을 수가 없다.
여수시 로터리에서 녹동행 버스를 보고 이제는 목적지에 갈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뻤으나 내 재간으로는 버스 승차를 할수 없어 로터리에서 교통 정리하는 경찰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버스에 태워줄 것을 요청하니 가로수 밑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20 여분간 쉬고 있는데 누가 등을 만졌다. 뒤돌아보니 경찰이었다. 그분이 버스기사에게 부탁해 버스 뒷좌석에 탔다. 그런데 조금후 만원이 되니 승객중에 누군가 왜 한센인을 태웠냐며 고함을 쳐서, 나는 버스 조수에게 끌려 차 밖으로 내팽개쳐저 길바닥에 쓰러졌다.
버스 타는 것은 포기하고 항구에서 배편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교통정리 하는 경찰에게 배을 태워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는 하는 일도 뒤로 하고 거리가 먼 항구까지 가서 배 선장에게 부탁해서 배를 태워주었다. 세얼은 흘러 58 년이 지났지만 그때 그 교통 경찰관을 잊을 수가 없다. 만나보고 싶고 감사드리며 시간을 내어 찾아보고 싶은 심장이다.
조양호가 금산면 거금도에 도착하니 작은 배가 나와 손님을 태우고 작은 항구에 내려 주었다. 산을 넘어서 지금도 선착장까지 걸어가면서 생전 처음 바닷길에거 고동을 보았으며 세워놓은 김발에서 마른 김을 뜯어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난생 처음 바다를 보고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생각해 보았다. 시95:5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갈 곳이 없고 잠 잘 곳이 없어 마을에 나무 쌓아 놓은 곳이 있어 그 옆에서 옛 야곱이 돌 베개 하고 잠을 잔 것처럼 자는데 돌 대신 4 월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봄비를 맞으며 선창가 창고 처마 밑에 서 있는데 할머니 한분이 손자를 업고 내 앞으로 오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대전에서 소록도 가기 위해 왔습니다.”고 할머니가 가고 나서 얼마 후에 청년이 내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와서 김밥을 주고 가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아들에게 시켜 김밥을 보낸 것이다. 내 평생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김밥이었다. 그릿시냇가에 숨어 굶주린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하신 하나님은 나에게도 역사하신것이었다.
o소록도
1959 년 4 월 28일에 토요일 집 떠난지 17 일 만에 소독도 갱생원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소록도는 낙원 같았다. 해안성 12 킬로미터 길이 어린 사습같다고 해서 소록도라 부르게 되었단다. 한센인 7 천여명, 교회 8곳, 성당 1 곳, 초등학교, 중학교, 성실성경고등학교 의학강습소가 있었고 중앙공원은 에덴동산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19 살에 초등학교 6 학년에 편입하였다.
o결혼
1967 년에 약혼을 하였고 그후 하나님께서는 내게 3 명의 아들을 주셨다. 그리고 불교 유교로 평생을 살아오신 부모님은 주님을 영접하고 하늘나라에 가셨다. 기적이었다.
이 모든 것을 주시고 인도하시고 주님을 따라 가게 하신 하나님이 감사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