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이 글은 전에 읽었던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을 다시 읽으면서 공감한 부분을 퍼온 글입니다.
시36: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기도는 상황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보고 느끼기까지
얼마나 방황하고 지체했던다!
그 모든 축복은 찾아온다네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아 본적이 없다고 고백하면 그것은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약속 또는 기도의 능력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나무라는 것이 됩니다. 기도만큼 영적 생활을 달아 보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기도하기를 애쓰는 사람은 자기가 바로 하나님의 목전에 서 있음을 즉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승리의 생활을 살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릴 수 없고, 그 기도 생활은 반드시 나약하고 변칙적이며 간간이 땜질하는 실효성 없는 거짓일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은 틀림 없이 “예수님의 뜻대로”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뜻을 알수 있을까요?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로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했을 뿐 아니라 “고전 2:16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담대히 선언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에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약속해 놓았는지는 그분의 뜻을 따라야 알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간구의 의미를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로 기도가 능력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기도가 세상에서 최고의 능력임을 확신하는지요? 기도가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인다고 믿습니까?
올바르게 기도하지 않으면 올바르게 생활할 수도 없고 올바르게 봉사할수도 없습니다. “기도하겠다”는 선한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면서 올바른 기도를 하려면 회개하면서 다윗같이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순서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온 마음이 깨끗하게 하고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는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그 말씀을 시험해 보지도 않는다는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에 무슨 잘못이 있는가 살펴 보라는 경종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착오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전부가 되실 때, 즉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주인이 되시며 왕이 되실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를 들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고 특권입니다.
한번은 무디가 스코를랜드의 에딘버러에서 많은 어린이들이 모인 가운데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기도란 무엇인지요?” 그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할것을 예상하며 직접 그 답을 말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내 여기 저기서 수십 개의 작은 손들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는 한 소년을 지적했습니다. 그 소년은 즉시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대답했습니다.
“기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무디는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대부분의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할것입니다. 그러나 분명이 기도는 거지가 부잣집 대문을 두드리며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심부름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라는 말은 사실 “방향이 정해진 소원”을 의미합니다. 그 방향은 하나님을 향하며 진정한 기도는 모두 하나님을 찾습니다. 기도는 순수히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것입니다.
“시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