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름은 모두 똑 같이 ‘야’ 라고 불러요”
하나님께서는 외국어를 잘 배워서 외국어를 구사를 잘하는 편이 아닌 한국인의 특성을 잘 아시고 우리 나라에 생명을 바치고 간 수 많은 선교사들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게 된 복음을 빚을 갚기 위해 수 많은 나라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이동해 오게 하셨습니다. 한국은 그렇게 될수가 없는 나라인데 정말 하나님의 주권인 것을 늘 고백하게 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전혀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서 독일 광부나, 보조 간호사로 줄줄이 가기를 원했던 시절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닌데 하나님께서는 정말 짧은 시간에 한국에 경제를 발전시키셔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려오게 하셨습니다. 88 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오지 않았을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독일 광부로 갔던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면 지금도 그 고백의 일부가 생생합니다. 너무나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는 그 작업 현장을 부모님이 보셨다면 굶더라도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고 했을것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독일은 그런 노동자들이 계약 기간을 마치고 공부를 더 하기를 원한다던지 다른 직업을 찾을수 있게 해 주어서 몇 년전 독일에서 그런 광부 출신의 아버지와 시체를 종알 닦는 보조간호사 일을 했던 엄마 사이에서 난 아들이 청년이 되어서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데 우리 나라는 필리핀 자매가 얼마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마마, 처음 공장에 갔을 때 사장님이나 사모님은 우리 모두를 큰 소리로 ‘야’ 라고 부르고 등을 아프게 쳐요 우리 외국인들은 이름이 모두 ‘야’ 랍니다.” 그리고 다음 하는 말이 “너희는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 “빨리 빨리!” 이게 하루 종일 듣는 이야기라는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일하는 공장이나 숙소를 수시로 가기에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생소하지 않고 눈에 그려집니다. 공장은 거의다가 환경이 좋지 않습니다. 여름에는 정말 뜨겁고 겨울에는 난방이 거의 되지 않는 상태이고 한국인들이 기피하고 한국인을 구하기 힘들기에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것입니다. 그들의 숙소는 주로 컨터이너에 주루룩 여러명이 기거하기에 보통 한국인들이 상상하기 힘든 환경입니다. 이층에 컨터이너가 설치 되어 있는 곳에 계단이 깨지고 부서져서 밤에 야등이 켜 있지 않는 그곳에서 사고 당하기 딱 좋을뿐더러 실지로 인도네시아 데니는 그런 이층에서 뒤로 넘어져서 머리에 뼈가 부러지는 사고로 생명이 위험한 것을 급히 중환자실로 옮기고 살린적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것이고 예수님이라면 그들을 어떻게 대하실것인가? 주님을 잘 알고 주님의 정신을 좀더 잘 이해하지 않고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살수가 없을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기 전에 주님을 잘 알아야 할것입니다.
80 년대에 출판되어서 그때 읽었던 “예수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책을 다시 읽으면서 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맡았고 세상에서 고위층이 모인 교회에서 전혀 부족함이 없이 설교자로 살면서 설교를 잘 한다고 인기가 좋던 목사님이 한 실직자가 찾아와서 그가 쓰러져 죽음을 통해 맥스웰 목사님은 새로운 목회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행동 기준이 “예수라면 어떻게 할것인가” 를 교인들과 서약하면서 세상에서 소외되고 범죄자가 되어서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전혀 다른 태도와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외국인 노동자들과 비교하며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늘 휴가를 가고 해외 여행을 즐거던 목사님은 휴가를 가지 않았고 빈민가에 가서 다른 가족을 휴가를 보내주는 이야기입니다.
“헨리 맥스웰 목사는 해외 여행을 가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여행 가려고 저축해 두었던 돈을 렉탕글에 사는 한 가족의 여름 휴가 비용으로 아무도 모르게 썼다. 그들은 한번도 그 저주 받은 렉탕글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 가족에게 휴가를 마련해 주면서 그들과 함께 보낸 그 주의 일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맥스웰 목사는 어느 무더운 날 렉탱글로 내려가서 찌는 듯한 열기가 숨을 막는 한 지저분한 셋집에 들어셨다.
그는 그는 그 가족을 역으로 데리고 가서 기차에 태우고는 곧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갔다. 그곳에 마련해 둔 한 여신도의 집에 도착하자 어리둥절한 이 빈민 가족은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소금기 어린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소나무 향기가 담긴 바람을 쒸면서 전혀 뜻밖의 휴가를 즐겼다.
이 가족의 어머니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었는데 젖먹이인 막내는 늘 병을 앓았고 또 한 아이는 다리는 저는 장애아였다. 이미 오래 전에 실직한 애들 아버지는 몇 번인가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는 여행중 내내 병약한 막내아이를 안고 앉아 있었다. 그 가족이 마음놓고 쉬도록 보살펴 준 다음, 맥스웰 목사가 레이몬드로 돌아가려 하자 애들의 아버지가 그의 손을 붙잡더니 마침고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맥스웰 목사는 어쩐 줄 몰랐다. 애들의 어머니는 작년에 렉탱글에서 창궐했던 열병에 세 자나를 읽고 나서 완전히 탈진해 있었다. 그녀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줄곧 차창을 내다 보았다. 바다와 하늘과 틀판의 경치에 완전히 도취된 듯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 기적과 같았다.
맥스웰 목사는 자기가 목격한 기쁨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평생 처음으로 그런 희생을 했음을 깨닫고는 겸허한 마음으로 참다운 기독교인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여태껏 한번도 레이몬드의 무더위를 피해 매년 갔던 여름 휴가를 포기할 만큼 자신을 부인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발자취를 따라 어린이날 두 어린이는 자신이 선물 받을것을 기대하는 대신 자신의 저금통장을 모두 털어서 생명나무 미혼모 아이들에게 전달하여 옆에서 보는 우리를 감동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자녀교육도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너무나 좋은 교육인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