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참된 기초석”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로마시대에 로마로 향했던 “아피아 가도”는 맨 밑에 큰 돌을 깔고 다지고 또 다지고 그 위에 맨질 맨질한 돌로 평평하게 깔아서 오랜 세월이 걸려서 만든 도로이기에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도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래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반면에 우리 교회 근처로 올라가는 아스팔트길은 쉬지 않고 대형 트럭이 다니는데 얼룩 얼룩 아스팔트로 대충 빨리 때워서 길이 곧 패이고 때우고를 쉬지 않고 합니다. 이런 정신으로 신앙도 그렇게 쌓아가고 그것이 참된 신앙인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기에 전에 기도원을 수시로 많이 찾던 그 인파들은 기도는 길게 크게 하고 기도회가 끝나고 나오면서 벗어놓은 신발 찾으면서 서로 다투고 전혀 예수님과 관계없이 살면서 그러면서도 자신은 기도의 사람으로 자부합니다. 삶속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그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신앙이 인생의 어떤 광풍에도 아피아가도처럼 든든하게 오랜 세월을 버틸수가 있습니다.
네팔의 요셉하고 교도소의 요한이의 기초석은 정말 아피아가도 같기에 많은 사람들이 요한이의 편지를 보면 마치 유학간 아들이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보내온 소식같다고들 합니다. 오늘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형제들에게 닭을 100 마리를 주문해서 큰 파티를 여는 이야기는 참으로 우리모두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전에는 교도소 한끼 식사가 어떤지 본적이 없는데 요즈음 뉴스에서 한끼에 1140 원짜리 식사라고 정상을 달리다가 그곳에 들어간분들이 식사를 잘했는지를 계속 보도해서 그곳에 식사가 어떤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닭고기를 푸짐하게 놓고 다른 형제들이 기뻐할 생각을 하니 예수님의 숯불 생선구이를 먹는 제자들의 모습같아 우리도 흐믓하고 요한이는 어찌 그리 손이 크냐고 면회시간에 손좀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이제 금년 6 월이면 신앙 생활을 한지 3 년이 되는데 신앙의 기초석을 처음부터 바르게 시작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요셉은 그 충격으로 심하게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너무나 아파서 공장에서 일을 하기가 힘이 들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낫지를 않았. 을때 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교회로 첫발을 디뎠습니다.
내일 네팔로 떠나면서 이번주에는 쉼터에서 머물기에 어제는 같이 교도소에 요한이를 보러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요셉에게 네팔에서 교회라고는 가본적이 없고 힌두교 신자였는데 처음 교회 오니까 기분이 이상하고 어색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처음 교회에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잠시만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성경읽고 기도하고 하면서 집중해서 이 귀한 시간을 갖기 위해 전화도 꺼놓고 이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처음 읽어보는 성경이 어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반복해서 읽으니까 그 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슴을 조여드는 아픈 가슴의 고통과 터질 것 같이 아프던 머리로 인해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하나님은 요셉을 사랑하셔서 주님을 사랑하며 사모하며 외치는 요셉의 기도와 우리 모두 같이 중보하는 기도를 들어주셔서 밤에 편안한 잠을 잘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요셉에게 기도를 할줄 몰랐는데 어떤식으로 기도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요셉은 힌두교 식으로 기도하던 모든 것을 중단하고 “예수님 더 알고 싶어요, 예수님 성경도 가르쳐 주세요.”라고 성경읽고 그 성경말씀 붙잡고 기도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끝에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렇게 배운 것을 계속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복동가족들이 일주일에 하루 금식기도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토요일 일이 없을때를 선택해서 같이 금식기도를 하면서 어떤 날은 하루 한끼, 또는 두끼 때로는 하루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네팔 친구들에게 공장을 찾아가서 열성을 가지고 전도하고 십일조를 하고 주일을 성수하고 하니까 3 년이 채 안된 그의 신앙은 건성으로 교회에 앉아서 30 년을 왔다 갔다 한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아피아 가도” 같이 다져지는 신앙이 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내를 잃은 상처 타령만 하기 딱 좋은 그런 슬픔을 빨리 털어버리고 위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요셉이와 요한이가 서로 면회시간에 만날수 있는 특혜를 가졌습니다. 교도소에는 외국인 학생들은 방학이나 휴일을 이용하여 같이 간적은 있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는 요셉이가 첫번째로 그런곳에 같이 갔습니다. 요셉이는 요한이에게 찬양을 불러주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옛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만남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같이 간 우리 일행도 모두 흐믓하고 기뻐서 역시 1000 km 당일치기의 시간이 기쁨의 선물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공장지대나 가까운곳밖에 한국을 볼수 있는 기회가 외국인 노동자들은 볼 기회가 없는데 요셉이는 경기도 일산에서 남쪽까지 고속도로를 타면서 볼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네팔의 슈랜드라 목사님과 메뉴카사모님은 4 번째 교회를 개척했는데 빽빽하게 가득찬 교회의 사진에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 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슈랜드라 목사님은 이곳에서 Th.M 과정을 마쳤지만 메뉴카 사모님은 상담학 공부를 이곳에서 하면서 대학원 다니는 3 년이 채 안되는 시간에 메뉴카의 신앙의 기초석도 “아피아 가도” 같이 다져져서 두 사람이 네팔로 돌아간지 6 년만에 이미 200 명의 교인이 넘는데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한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과연 기초석이 든든한지요? 정말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그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