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 – 현 소망교도소 부소장 박효진지음”(4)
흙 묻은 성경책
태종이라는 감호자가 있었다. 보기드문 신경질적인 성격에 저돌성까지 가미된 그의 눈초리는 얼핏 보아도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음산했다. 사고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고, 사건의 배우를 케면 언제나 그의 이름이 겨명되었다. 한마디로 태종이는 사고뭉치 그 자체였다. 그러니 회심하기 전, 사고자들을 무자비하게 웅징하는 것이 주업이었던 나와는 철천지 원수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가 날 어찌랴” 하고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다.
한번은 감호자들 사이에 큰 싸움이 발생했는데, 태종이가 그 사건의 주요 관련인물이었다. 조사를 거쳐 2 개월의 징벌이 선고되었고, 태종이는 악을 쓰면서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는 징벌방에 들어가서도 예의 그 독종짓을 계속했다. 특기 자기를 조사하여 징벌을 먹인 “지옥에서 온 박 효진주임”을 향한 증오와 적대감을 공공연해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거듭난 것은 태종이가 독방에 수용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였다. 예수님을 새롭게 만난 후 태종이를 보니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었다. 날마다 감소자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중 문득 태종이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성경을 한권 주고 싶었다. 기왕이면 가장 좋은 가죽 성경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우리가 살던 근처 서점에서는 그런 성경을 구할 수가 없어서 아내에게 부탁해야 했다. 아내는 몸살감기가 심한 상태였지만 성경책을 안동까지 사러갔다 왔다. 이튿날 아침, 아내가 기쁜 마음으로 안동까지 나가서 사다준 성경책을 오토바이에 고무줄로 꽁꽁 묶고 출근길에 올랐다. 휘파람을 불면서 달리던 중 툭 소리가 나서 뒤돌아 보니 고무줄이 풀어져 성경책이 길바닥에 팽겨쳐진 것이 아닌가!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은 반 황토 길바닥에 떨어진 책은 온통 흙범벅이 되었다. 나는 물수건, 마른수건으로 책을 정성껏 닦아 거의 원상을 회복한 후에 태종이가 갇혀 있는 독방을 찾아갔다.
“태종아, 니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살끼가? 니도 인자 사람될 때 되었을낀데 참말로 답답대이. 이 성경책 읽어보고 인간 좀 되봐라. 이 성경책 살라고 우리 마누라 아파 다 죽어가는데도 안동까지 갔다 아니가. 그 정성 생각해서라도 꼭 좀 읽어라.” 그래도 눈을 아래로 꾹 감은 채 목석같이 앉아 있는 녀석을 뒤로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큰 기대없이 일상적인 업무에 파묻혔다. 그런데 한 열흘 정도 지났을까? 직원들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박 주임이 도라이가 되더니 태종이도 도라이가 되었단다.” “가도 이상하게 갔다며?” 무슨 말인지 확인해 보니, 태종이가 독방에서 미쳤는데 약간 이상하게 미쳤다는 것이다. 벽을 쳐다보고 앉아서 하루 종일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는데, 특이한 것은 직원들을 보기만 하면 허리를 90 도로 굽혀서 인사를 하고 (예전에는 인사는 커녕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다녔다), 그동안 잘못했다고 사과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 소문들을 종합해 보니 태종이에게 성령의 큰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독방으로 달려가 보았다.
“야! 태종아. 니 성령받았제? 은혜받았제? 틀림없제?”
“참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네요. 잉잉잉…..”
그 독살스럽던 얼굴은 어디로 갔을까? 태종이는 독방 한가운데 퍼질러 앉아 울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연신 눈물을 훔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내가 준 성경책을 으스러지게 부여잡은채 퉁퉁 부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주임님, 사모님은 어디가 아프세요? 무슨 중병에 걸리셨어요?”
“감기 몸살에 걸렸다가 이젠 다 나았는데, 와 묻노?” 그 순간 멍한 표정을 짓는 태종이.
내가 성경책을 주던 날만 해도 태종이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읽을거리도 없고 소일거리도 없어서 미치도록 지루한 날들이 이어지던 차에 문득 박주임의 아내가 사다 주었다는 성경책에 눈이 머물렀다. 흥미는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법 괜찮아 보이는 책이라 들고 이리 저리 흩어보던 중 지퍼 사이에 묻어 있는 흙이 눈에 띄었다. 흙을 닦아 낸다고 닦아냈는데, 지퍼 사이에 끼인 흙은 그대로 남았나보다. “이상하다. 성경책에 웬 흙일까?” 그때부터 그는 제 머리속에 기가 막히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박주임이 성경책을 줄 때 부인이 아파서 다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해 이 책을 사러 안동까지 갔다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병에 걸린걸까? 분명히 불치의 병일거야. 악성 빈혈 같은 걸까? 아니면 암? 하여튼 이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중병이 틀림없어. 이 성경책에 흙이 묻은 것도 그 때문일거야. 그의 상상은 비약에 비약을 거듭했다. “틀림없이 지쳐 병든 몸으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다가 결국은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이 성경책을 흙바닥에 떨어트린거야. 아! 나 같은 쓰레기를 위해 사모님이 죽음의 길을 힘들게 걸으셨다니!”
태종이는 성경책을 부여잡고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해 주었다는 사실 앞에 그의 자아가 서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르는 어느 사모님이 죽음의 고통을 이겨가면서 자기를 위해 성경책을 사다 주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잠이 안 오도록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한장 한장 성경을 넘길때마다 눈물로 얼룩진 그의 마음에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오한복음 3 장 16 절 앞에서 고꾸라졌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느 누구도 사랑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이 큰 사랑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음과 싸우면서도 자신을 위해 이 귀한 성경을 사다준 사모님의 사랑이 기초가 되어 결국 태종이는 좁은 독방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기에 이르렀다. 회개의 뜨거운 눈물이 그의 양볼을 타고 흐르는것을 본 직원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전도자의 중요한 부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모님의 사랑이 기초가 되어” 라는 부분에서 우리는 이 사랑이 없이 말과 혀로만 전하기에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것이고 전도의 열매가 없는것입니다. 태종씨는 자기가 그렇게 상상을 한것이지만 전도의 경험상 모든 사람들은 사랑만이 기적을 남기는 것을 셀수 없이 보았습니다.)
태종이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나는 그를 끌어난고 울었다. 일면 우스꽝스러운 오해에서 비롯되기는 했지만 태종이라는 한 인간이 걸어온 그 비참한 가시밭길이 끝나고 이제는 복음으로 그를 안연하게 인도하시는 손길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그로부터 얼마 후, 태종이가 나를 찾아왔다. 상담실 한구석에서 만나자마자 태종이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오열하며 그가 털어
놓은 이야기.
“주임님, 나는 주임님을 죽이려고 예행연습도 수 차례했고 실제로 기습도 두번이나 시도했습니다.” 순간 한기가 쫘악 끼쳤다. “주임님이 하도 악질같이 우리들을 조져대니까 순간적으로 주임님을 없애버려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까짓거 나야 무슨 일을 당해도 슬퍼해줄 사람 하나 없는 천애고아가 아닙니까?”
태종이를 생각할때마다 우리의 우스광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측할수 없는 거룩하신 뜻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매일 거울을 들여다 보며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그 매섭던 눈꼬리가 웃음으로 주름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도 매료될 정도였다. “지옥에서 온 박 주임”의 험악한 모습은 사라지고 날마다 새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모든 사람들이 정겨워 보였고, 감호자를 만날 때 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겠다는 뜨거운 일념이 넘쳐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