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뛰어들어 성취하는 기쁨을 가르쳐라”
너무나 공감하는 자녀 교육에 관한 류태영박사님의 글을 먼저 나눕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아이가 무슨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역정부터 내기 일쑤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거냐, 공부만 열심히 해라. 엄마, 아빠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피땀 흘려가며 돈을 버는데….쓸데 없는 생각은 하지도 마라. 너 괜히 공부하기 싫으니까 그러는 거지?”
이러한 부모의 품에서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아무 일도 할수 없는 정신적 불구가 되기 쉽다. 그러면서도 그 아이들은 언제나 독립을 꿈꾼다.
“엄마, 절 제발 좀 내버려 두세요. 진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간섭 받지 않고 사는 거예요.”
“그럼 내보내 줄 테니 혼자 한번 살아보렴.”
“……대신에 돈을 주세요.”
십중팔구 독립을 꿈꾸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끝맺음은 돈을 달라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반쯤 불구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이 모두가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것이다. 무조건 “내 새깨, 내 새끼”하며 젖꼭지를 물릴 때부터 이러한 싹은 자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보호는 아이가 커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소명을 갖고 자신만의 길을 가도록 규정지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아이가 정신적, 경제적으로 온전한 독립을 하여 사는 것을 볼수 있어야한다. 지금부터라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 홀로 뛰어들어 성취하는 기쁨이 어떤 것인가를 그리고 알아야 한다. 포기할줄 모르고 열심히 뛰어가는 인생을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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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주위에 아이가 전혀 정신이 자라나지 않아서 성인아이로 사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어릴때 독립적으로 스스로 일어서는 것을 설사 넘어진다해도 반복 훈련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중요한 이 코스를 배우지 않을 때 성인아이로 의존형으로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주 어릴 때 밥을 먹여주는 시간이 좀 지났을 때 홀로 먹게 하니 우리 친정엄마는 오래 걸리고 사방 흘리는 것을 보면서 왜 빨리 먹여주고 치우면 간단한 것을 그렇게 하느냐고 우려했습니다.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걷어온 빨래를 개도록 하고 자기가 가지고 논 장난감은 스스로 치우게 하고 초등학교 저학년때도 청소기를 돌리고 일을 하면 용돈을 주는 것을 보고 그때도 친정엄마는 사랑하는 아이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고 반대하셨지만 내 의견은 사랑하기에 더욱 독립적으로 키워야 이 험난한 인생을 잘 이길 힘이 있다고 생각이 달랐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자 아들은 은행에서 심부름 하는 일을 하고 첫 월급을 타서 나와 같이 가서 사준 부라우스를 지금도 장롱안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딸도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서양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부부가 밤에 외출을 할 때 자신의 아이를 고등학생에게 맡기고 아르바이트 하는일을 그 아파트에 사는 다른 외국인들도 하고 딸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름방학때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긴 유니폼을 입고 수영장에 놓은 식탁에 중국 차를 따르고 종업원을 하니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해서 한시간에 얼마 버는 것을 몸에 익히니 낭비라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생의 항해에서 풍랑이 올 때 온실속에서 자란 화초는 견디지를 못하고 독립형으로 키운 자녀는 강인하게 대처를 할 수가 있는 것을 세월이 지난후에 보게 됩니다. 다른 집 자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한만큼 더욱 강인하고 독립적으로 살도록 어릴때부터 가르치는 것은 인생을 해쳐나갈뿐 아니라 자신만 간신히 사는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세계를 향해서 이웃사랑에 쓰임받는 하나님의 재물의 관리자로 어릴때부터 키워야 할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미래에 자기가 심은 열매를 보며 살게 될것입니다.
잠29:17 네 아들을 바로잡으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리니, 정녕, 그가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