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 월 12 일에 분당 큰 은혜교회에서 잠시 뵈었던 이순희선교사님은 그날은 잠깐 스쳐가면서 뵈어서 잘 몰랐는데 22 일 주일에 오셨을 때 뵈니 전혀 꾸미지 않으신 얼굴이 시각장애를 갖고 있어도 너무나도 밝고 아름다운 얼굴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주셔서 우리 모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명은 생명입니다: 선교하는 삶”
* 본문말씀*
사도행전 20: 22-24
22)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1. 자기소개
저는,1995년 부터 2016년 현재 까지, 러시아를 비롯하여, 구 소련으로 부터 독립한 우크라이나와 몰도바에 이르기까지 3개국에서 21년째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 입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도, 또 복음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저는,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살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하지 못했던 삶의 굴곡들과 마주하게 되며 깊은 고통과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힘든 시간들을 겪던 중, 우연히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주님을 내 삶의 구원자요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을 살자고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저의 인생은, 마른 나뭇가지만도 못한 나를 살리신 주님이 늘 인도 해오셨고, 하나님 나라의 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섬김으로 사람들에게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로 살게 하셨습니다.
2. 사역소개
1차 사역: 나의 소유를 내려 놓게 하신 여정, 이방인으로서의 삷
저는 자상하고 성실하며 사랑이 많았던 남편 그리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신앙이 없던 저는, 아들이 8살 때 재학 중이던 초등학교의 담임선생님을 통해 우연히 복음을 듣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새벽예배 출석과 더불어 가능한 교회의 모든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였고,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조금씩 신앙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순식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은 두 식구에게는 정말 슬프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고,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저와 아들을 많이 사랑해주고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헌신적이었던 남편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큰 아픔과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저와 제 아들에게 선교사가 되기 위한 훈련들을 시작 하셨습니다. 가장 먼저 남편의 죽음을 통해 나의 소유를 모두 내려놓게 하는 훈련을 감행하셨습니다.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을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귀히 여기며 그 일들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내가 사랑하고,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주님과 그분이 주신 사명을 모든 것으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깨달음은 우울하게 지내던 저로 하여금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슬픔 대신 기쁨, 절망 대신 소망, 두려움 대신 믿음을 주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매일은 저의 안에 남아있던 슬픔의 잔재들 조차 헤아리고 치료 해주었습니다. 또 그 가운데, 해외 선교사 가족 분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도 열어주셨습니다. 저의 모교회인 대조제일장로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용천노회)의 해외선교부 회계로 봉사하는 가운데 타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 가정에 교회의 지원금도 보내드리고 편지를 통해 교회와 선교지의 소식들을 전달하는 일들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도 주님은,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제게 선교에 대한 마음을 끈임 없이 갖게 하셨고, 모 교회 외의 선교단체들을 통해서도 단기선교여행을 다녀오게 하셨습니다.
1994년 여름, 처음으로 아들과 함께 다녀온 단기선교 여행지는 러시아 모스크바였습니다. 유럽 문화권으로 가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선교여행 자체가 처음이 아니었던 저와 다르게, 당시 13살이던 저의 아들은 많이 설레 보였습니다. 선교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온 우리 모자는 러시아와 그곳에서 선교사로 사는 삶에 대한 부푼 마음이 가라앉지 않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저는 삶의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장기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에 대해 많이 갈등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어린 아들은, 해외에서 사는 삶에 대한 동경함이 아니라, 단기선교 기간에 만나 섬겼던 굶주리고, 병들어 아파했던 러시아 현지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눈물로 주님께 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95년 05월에 우리 두 식구는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싫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선교사로 살고 싶다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 받았기에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행복함만을 만끽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왔지만, 타국, 타민족 속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늘 배고프고, 춥고, 부족하고, 마음 졸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 가운데, 주님은 저와 아들에게 또 한번의 큰 훈련을 주십니다. 1995년 8월 31일, 저희 두 식구가 러시아에 입국한지 약 3개월 만에, 아직 언어공부도 제대로 못해본 어린 아들은 우리가 함께 지내던 모스크바에서 800km 떨어진 성-페테르부르그 (구 레닌그라드)의 한 기숙학교로 가게 됩니다. 그렇게 헤어진 저희 두 식구는 2010년, 아들이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저도 처음으로 안식년을 갖고자 한국에 입국할 때까지 약15년 동안 서로에게 소식도 잘 전하지 못한 채 떨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 그 삶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아들이 복음을 깨달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며, 지금도 주님의 종으로 살고 있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아들은 13살에 저와 떨어져 러시아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후에,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아세아연합신학교에 학사 편입하여 선교학을 전공한 후, 현재는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 주에 위치한 비블리컬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며, 현지 이민자교회에서 영어중고등부 전도사로 한인 2세 학생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들과 떨어진 제게, 남편을 떠나 보냈을 때와 동일하게 속히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예비하신 훈련과 사역에 돌입하게 하셨습니다. 저의 사역은 총 3차까지 이루어졌습니다. 1차 사역은, 시베리아 기차전도 사역입니다. 따듯한 봄과 여름에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상주하며 선교여행을 준비합니다. 준비기간에 하는 것들은, 전도지, 성경, 전도에 필요한 작은 간식들, 개인식량, 침구류, 옷, 세면도구 등을 챙기는데요, 그 때의 모습은 전투지로 가기 위해 군장을 챙기는 군인의 모습을 방불케 합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그나마 안전하고 따듯한 숙소가 있던 모스크바를 떠나 춥고 열악한 시베리아로 향하는 기차를 탑니다. 긴 겨울 내내 교회가 거의 세워지지 않았던 시베리아 지역의 도시들을 순회 하며 러시아 현지인들과, 중국에서 밀입국하여 불체자 신분으로 장사를 하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정교회를 세우며 제자양육을 하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b) 2차 사역: 나의 나 된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베리아 선교가 4년차에 접어들 때 즈음, 하나님께서는 제게 선교의 지경을 넓히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구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독립한 국가들은 모두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많은 선교사님들이 있던 모스크바보다 더 열악한 나라와 도시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몇 개의 나라를 지정해서 여행하던 중, 위치상 구 소련 독립국가들 중 동유럽과 가장 근접해 있던 우크라이나라는 나라의 작은 도시 ‘아포스톨로보 (Apostolovo)’에서 2차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브에서 선교사님들과 만났을 때, 가정과 아이들이 있어 너무 열악한 도시는 가기가 어려운 그 분들의 상황을 들었습니다. 이미, 4년의 선교 경험이 있었지만, 새로운 곳, 그것도 이전 보다 더 열악한 곳으로 가는 결정은 쉽게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늘 주님은 제게 주님의 마음을 주셔서 저로 하여금 그분의 인도함을 따라 가게 하셨고, 결국, 단 한 명의 선교사와 외국인 초자 없었던 이국 땅의 작은 시골에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양육에 힘쓰게 하셨습니다.
집도 교회도 성도도 동역자도 없는 곳에서 기적들을 체험하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세계 2차 대전 발발 시, 스탈린에 의해 러시아 동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인접 구 소련 국가들로 강제이주 당한 우리 동포인 고려인 들을 만난 도움을 청했습니다. 한국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대부분의 사람들 중 그나마 한국어를 조금 구사할 수 있는 고려인 여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 해서 찾아갔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김 나쟈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출생하여 우크라이나의 고려인 청년에게 시집을 왔다가, 남편이 가정을 떠나자 자식도 돌보지 않고 긴 시간 동안 소망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과 교회 사역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던 그녀를 설득해,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복음도 전하였습니다. 아직 믿음은 없었지만 그녀의 도움으로 아포스톨로보 문화회관 건물의 작은 방을 밀리고 거의 쭈그려 앉다시피 해야 하는 나무 의자들 몇개를 준비해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한 명, 두 명,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혼들을 교회를 보내주셨고, 이제 막 복음을 접하고 주님을 영접해 열정으로 가득 찬 몇 안 되는 성도들과 함께 주변 지역에 까지 전도하러 다니며 감사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한 달 생활비를 미화 20불도 채 쓰지 못하는 어려움 상황에서, 하나님은 제게 교회건물 건축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정이 필요했었고, 어느 곳 하나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벽돌 한 장까지도 그분이 예비하신 사람들을 통한 재정공급과 인력공급으로 교회건물 건축을 완성하셨습니다. 교회건축이 시작되던 초기에, 갑자기 눈이 침침해짐을 느꼈습니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잠시 생긴 증상이라고 여기고는 사역과 교회 건축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그렇게 앞만 보며 달려가던 중,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헌당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의 눈물이 흘렀지만, 이미 저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아름답게 지어진 교회의 모습을 저의 눈으로 집적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나의 사명이구나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 앞으로의 삶을 놓고 기도하였습니다. 제 안에 불 붙었던 복음의 불씨는 그대로 살아 있었지만, 시각장애인이 된 제가 계속 선교사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쟈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소망과 미래가 없이 살던 그녀가, 저를 통해 복음을 전해 듣고 삶이 변하며 믿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녀는 처음 제가 알던 나쟈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늘 봐왔던 그녀는 제게 고백했습니다. “선교사님의 눈이 다시 떠질때까지 저는 어디든 함께 동행하며 선교에 동참하겠습니다.” 주님은 선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막다른 길에 닿을 때도 늘 길을 열어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나쟈와 저는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함께 한국, 미국,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 선교를 위해 보내신 땅들을 함께 밟으며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아포스톨로보 교회는 꾸준히 성장해 갔습니다. 18년 전 저를 통해 복음을 전해 받은 우리 성도들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믿음으로 살아가며, 그들의 삶을 통해 예배하고 교회를 지키며 지역 선교와 봉사에 게을리 하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 영토의 확장을 목표 삼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제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눈을 잃으면서 까지 선교하는 저를 칭찬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길 바라고 소원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c) 3차 사역: 안주 하지 않는 삶
구 소련 독립국가들 중 가장 적은 면적과 인구수를 가진 몰도바는 그 크기만큼이나 가장 열악한 삶의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한번도 못 들어보고 생소하기만 했던 그 나라에 선교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복음이 없는 땅이라고 합니다. 선교사를 보내주십시오.”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소망없이 살아가는 영혼들이 눈에 밟혔고, 눈물 없이 기도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이번에도 주님은 제게 부인할 수 없는 마음을 주십니다. “선교사가 필요하다면 네가 가면 되지 않겠니?!” 한번도 안 가본 몰도바와 그 땅의 영혼들을 놓고 눈물로 기도하던 제게 그런 마음을 주셨을 때,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주님, 또 움직이라고요? 저는 이제 눈도 멀었고, 아직 아포스톨로보에도 할 일이 남아있는데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저는 또 다시 몰도바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시력마저 잃어 제가 보고 느끼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주님께서 더 강력히 임재 하셔서 상황들을 열어가셨습니다. 실제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2 개의 국경, 왕복 4번의 국경심사를 통과해야만 다녀올 수 있는 몰도바는 그 때까지 제가 밟았던 어떤 선교지 보다 사역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 그 곳에 도착했을 때, 주님께서는 예비하신 영혼들과 도울 자들을 보내셔서 그 분을 일들을 하게 하셨습니다. 몰도바에서의 주된 사역은 가정교회와 제자양육이었습니다. 자립까지는 앞으로도 좀 더 지속적인 지원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그 수는 적지만, 복음을 깨닫고 주님께 헌신한 형제, 자매들이 있기에 끈임 없이 교제하는 가운데 함께 그 땅을 순회하며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3. 본문말씀나눔
***참조구절***-디모데후서4:7-8: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4:7-8)
오늘 본분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사울이 바울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자기가 달려가야 할 길 즉,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특정한 목표보다 방향이라는 말을 들어 보신적 있으신지요? 복음을 듣거나, 들어도 깨닫지 못한 우리들의 삶은, 제한되고 왜곡된 인식능력을 가진, 즉, 죄로 인해 분별력 없이 방황하며 사는 삶과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각자의 삶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그분의 일에 대해 깨닫게 되고 그것이 곧 우리의 삶의 전부가 되는 방향성을 갖게 됩니다. 만약,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면, 간절함으로 찾아야 합니다. 지도 없이 길을 찾아갈 수 없듯, 사명을 모르고는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명을 이미 알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과 같이 그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는 우리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다 드릴 수 있는 마음과 믿음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깨닫고 그것에 모든 삶의 열정을 부어 살아가는 것은 절대 우리들의 힘으로 이뤄낼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진정으로 깨달아 알아야만 가능하며, 그 이유는 복음을 깨달음이 바로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무런 목적과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의 삶을 통해 그 분의 선교를 하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저 같은 선교사이든,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생명처럼 여기고 그 사명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4.기도제목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과 저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중보를 부탁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복음에 대한 저의 열정이 앞으로도 식지 않고, 더 뜨거워만 지길 기도 부탁드립니다.
둘째, 저의 생명은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려있으니, 그분께서 저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더욱 강건하게 해주시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한국에 GIMC (Global Intercessory Mission Center) 세계중보선교센터를 설립하여 이 지구에 하나님의 영토를 넓혀가는데 귀히 쓰임 받는 선교의 도구가 되자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한 작은 단체이지만, 저희는 끈임 없는 중보와 장기 및 단기 선교사 동원, 선교 사역 지원 등 차츰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세계선교에 동참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복음의 불씨와 선교의 열정이 더 많은 형제 자매들에게 전해지는 귀한 하나님의 기관이 되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