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가문세우기”
홍콩에서 살 때 한 영사님이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분은 홍콩에서 영사로 일을 하다가 미국으로 발령이 나서 미국으로 가셨는데 홍콩에 잠시 들릴 일이 있어서 오셨다가 간증을 했습니다. 이분의 고백이 외교보다 더 힘든 것이 내교라고 하시면서 한국에서 방문하는분들을 대접하다보면 늘 술좌석이 당연하기에 술을 안 마실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평소와 같이 술을 마시고 늦게 집으로 귀가했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아들의 방에 불이 켜 있기에 살짝 문을 열어보았더니 아들이 기도를 하고 있더라는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빠 술좀 마시지 말고 같이 교회가게 해주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쇼크를 받은 아버지는 술을 끊기로 작정하고 노력하여 술을 끊고 주일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고백이 자신의 동료들은 모두 술로 인하여 생긴 병으로 온갖 심각한 병들이 걸려서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은 아들의 기도로 그후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의 기도는 아빠를 건강하게 살린것입니다. 그리고 미국 LA 에 발령이 났을 때 신문기자가 이곳에서 꿈이 무어냐고 질문을 했을 때 자신의 꿈은 그곳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것이라고 대답을 했더니 신문기자는 겨우 그런 꿈을 가졌다고 신문에 꼬아서 기사를 썼지만 자신은 가장 최선으로 사람이 행복한 길, 어릴때부터 가르쳐야 곁길로 가지 않는 주일학교 교사가 행복한 시간이라고 그후 교사로서의 시간을 이야기 했습니다.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윤권사님은 두 손자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손자와 이제 입학하려는 손자가 있는데 입학하려는 손자가 아빠를 변화시킨 이야기는 감동이고 너무나 중요하기에 여기에 같이 나눕니다. 권사님은 손자들에게 늘 말씀을 가르치고 읽도록 하고 암송시키고 하는데 사위는 세례를 아직 받지 않고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아들이 아빠에게 시 23 편은 길지 않으니까 아빠에게 암송을 하라고 권하고 아들은 옆에서 책을 보고 있을터니까 하면서 옆에서 지키니까 꼼짝못하고 암송을 했고 직접 써보라고 시험도 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전 13 장도 사랑에 특성을 암송시키고 하니까 아빠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목사님을 찾아가서 세례받겠다고 자원을 했다고 합니다 ^-^
아이는 참으로 쏜살같이 빠른 시간에 금방 소년 소녀가 되고 청년이 되어버립니다. 얼마나 가족을 믿음으로 키우는 것이 중요한것인지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결과와 믿음으로 잘 키웠을때 결과를 반드시 지금 이 시간 결단하고 시행해야 할것입니다.
“은혜의 가문세우기” 책과 “목사의 딸” 이라는 책 두 책을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유산을 잘 물려준 박용묵목사님의 은혜의 가문은 의사, 목사로 구성되어 구정이면 자녀들이 모두 인도로 선교여행을 가면서 아버지를 그리며 의사는 진료하고 목사는 말씀을 전하는 그런 인생의 열매와 주석을 써서 모든 목사님들에게 유명한 목사님의 딸이 쓴 그 자녀들의 삶은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몇년 전에 박용묵목사님의 일곱 자녀 중에 둘째 아드님이 되시는 박재형선생님의 이야기를 그 교회 신자에게서 들었습니다. 서울대 병원 의사선생님이시며 장로님이시기도 한 그 선생님의 사모님이 15 년째 의식이 없이 앓고 계시는데 아내를 위한 시를 써서 “당신이 아직도 숨을 쉬고 살아줘서 감사하다” 는 고백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어떻게 그런 신앙을 소유할 수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자녀들도 교인들이 빨리 천국을 가시던지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하면 아니라고 엄마가 그런 모습이라도 살아계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신실한 신앙인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은혜의 가문 세우기 책에서 “자녀의 결정을 기다려 주라”라는 내용에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목사님의 아드님이 고등학생때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은 당연히 입교를 하는데 바로 박재형장로님이 아버지에게 아직 생각이 없다고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만약 피멍이 들도록 때리고 하는 것이 옳다면 아버지 목사님의 체면이 있는데 하나님 앞에서 그러면 되느냐고 매질을 하고 밥을 굶기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박용묵목사님은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대학교 들어가서도 한참 있다가 스스로 결정을 하고 입교를 하였는데 그 칠남매는 아버지의 호를 따서 영파선교회를 조직하여 인도에 가서 의사는 진료하고 목사님 자녀는 복음을 전하는 믿음의 은혜의 가문을 세워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사님이 한국에 모델로 계신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