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성결교회”
동대문에 있는 중앙성결교회에 해마다 한번씩은 특강을 하러 가게 되면서 항상 만감이 교체되는 곳입니다. 일년에 한번씩 가기 때문에 어떤 중요한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서 “그곳에서 받은 사랑의 빚을 갚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게 됩니다.
“사랑의 빚” 중에 하나는 아주 중요한 믿음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최초로 실습을 한 현장에서 배운 것입니다. 오늘 미얀마 탕목사님과 좀더 교제를 하면서 믿음의 사역이 무엇인지를 나누기 위해 슈랜드라 목사님도 동반하고 이렇게 셋이서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먼저 탕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요즈음 돈의 가치가 아니고 35 년 전에 강남에 500 만원 전세를 얻으면 교회 장소를 하나 얻을 수 있었을 때 여전도회 다섯 군데서 100 만원을 내서 당시 부목사님이 개척을 하는데 도우라는 담임목사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우리 여전도회는 새로 분리되어 나와서 회원도 없고 35 세 미만이라 아직 집도 제대로 없는 연령층이고 아이들이 딸려 있어서 여전도회 나오기도 힘들고 회비라고는 전혀 없는데 그런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당시 여전도사님 두 분이 내게 충고를 했습니다. 한 분은 우리 같이 아무것도 없는 여전도회에 나이가 좀 지긋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권사님들이 모이는 곳하고는 전혀 다른데 어떻게 똑 같이 하라고 하느냐고 회장들 모임에 가서 못한다고 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다른 여전도사님은 기도 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못한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탕목사님에게 이런 경우 어느 분의 조언을 따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얼른 대답을 후자의 권면이 옳다라고 대답을 시원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은 그렇게 멋져 보이는데 두 달 안에 그 많은 액수를 책임을 질 수 있어요? 기도를 한다는 것은 책임이 있고 믿음을 보여주는 행동이거든요” 라고 하니 싱긋 웃는 것입니다. 우리는 헌장실습을 해 보아야 비로서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나는 기도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기도의 능력이 얼마큼 대단한지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나님 응답하시는지 전혀 모르는 애송이 집사였습니다. 당시에는 철야기도를 하면 저녁 9 시부터 다음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도를 했던 시간입니다. 오늘 모임에서 대부분 권사님과 장로님들이 모였기에 “그때 그렇게 기도를 해서 이 나라를 건설하지 않으셨나요?” 라고 하니 모두 수긍을 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자가용을 타고 철야기도를 오는 분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시간을 따져보니 모두 8~9 시간을 기도했습니다. 중간에 약간 쉬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감안해도 8 시간 이상을 기도하고 집에서 한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거리를 다녔습니다. 요즈음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면 허리 디스크 걸린다고 투덜댈 것입니다. 금식 기도하라고 하면 병 걸릴까 봐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기도한답시고 목소리가 콱 쉬었습니다. 우리 여전도회 회원들은 가난하고 나이도 어린데 몇 명 안되면서 내가 쉰 목소리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여전도화원들은 모두 감동과 일체감을 가지고 너도 나도 궐기해서 그 교회를 짓는데 헌금을 가져와서 다섯 개 여전도회에서 가장 어리고 기금도 없는데 단시간 만에 일등으로 한 달도 안되어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가져와서 교회에 놀라운 소문으로 퍼졌습니다.
당시에 모두 그렇게 철야기도 금식기도를 하고 기도원에 가면 바위에 앉아서들 그렇게 기도를 해서 바위가 반질 반질 했었는데 어느 날인 가부터 우리의 기도는 허약해지고 철야기도는 사라졌습니다. 금식기도도 사라졌습니다. 기도원의 바위는 이끼가 잔뜩 끼었습니다.
오늘 모인 그 자리에 저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곳에 모인 분들 중에서 모든 것이 풍성하고 자녀들도 신앙으로 잘 지내고 우리가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나도 신앙으로 잘 살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렇게 금식하며 기도하며 할 이유가 있느냐는 분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우리가 지금 누구를 질책하고 손가락질하고 하기 보다는 얼마나 우리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했느냐를 한번 돌아봐야 할 시간이고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힘들게 세워진 우리 조국의 미래는 너무나 불확실한 현실에 놓여 있는데 “하나님 하이! 하나님 (나는 바빠서) 바이!” 하는 기도를 하고 끝내야 할 시간이 아닌 것을 호소했습니다. 하나님께 눈도장만 찍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여전도회는 당시에 그 해 한 해에 가난한 회원들이 무려 500 만원이나 헌금들을 하였고 일년에 150 명으로 불어나는 현장에서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보는 중요한 것을 배운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후 선교사의 30 년 시간을 위해 믿음의 사역 복음 전파 사역을 연습시켰던 것을 고백합니다. “행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시니 많은 수가 믿고 주께로 돌아서니라.”
함께 탕목사님과 슈랜드라목사님과 함께 지하철에서 성경책을 펴서 읽으면서 과연 믿음으로 걸어가는 이 길이 어떤 것인가를 나누면서 아주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앙성결교회에서는 요한 웨슬리의 신앙에 근거한 그 정신을 다시 살려서 요한 웨슬리 한명이 한 나라를 새롭게 정화한 것같이 우리도 남은 생애의 시간을 기도하면서 우리 주위를 살리는 시간을 갖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이라면 TV 보고 흉을 보고 혀를 내두르고 비판하는 시간에 우리 조국을 위해서 기도시간을 갖기를 소원합니다.